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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Oct 10. 2024

감사는 감사 거절은 거절

편지를 받았습니다. 새롭고 로맨틱합니다. 문예지 청탁의 건이었어요. 만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새로 쓸까, 써둔 시에서 고를까 살피다 생각하니 편지 속에 작은 돌멩이가 하나 있었네요. 편지 가장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고료는 책으로 대신합니다"


고료 생각 없이 그냥 씁니다. 돈 생각을 했다면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지요. 고료 자체도 적은 곳이 많고, 청탁도 철마다 샘솟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씁니다. 그런데 고료 없이 청탁을 하는 일은 (처음도 아닙니다) 무척 서운합니다.


각자의 최선으로 준비한 만찬을 빈 손으로 먹고는 식사비는 이 음식으로 대신합니다, 하는 것과 같지요. 나 하나만 생각하면 고료 없이도 세상으로 시를 내보낼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일은 백 사람의 일과 이어지지 않겠어요. 은밀히 자행되는 상대적 공짜글에 동참하는 일이 되지 않겠어요. 문예지가 어려운 일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선생님들 몇 분이 공짜 청탁 절대 응하지 마라, 악습을 만든다, 당부하신 일도 기억났습니다. 청탁이 고마운 것은 백 프로 사실이지만 그래도 응할 수는 없었습니다. 감사와 아쉬움을 솔직히 써서 바로 메일을 드렸습니다.


좋아서 쓰는 글이 브런치입니다. 수익 창출 시스템이 구축되었지만 그거야 일부의 일부에 국한될 거예요. 그래도 씁니다. 돈을 초월해서 시간과 마음을 흔쾌히 바치잖아요. 이곳의 글은 이렇게 편히 공짜로 기꺼이 얼마든지 쓰지만 시에 있어서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소중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조금 까칠하게 지켜내고 싶은 거죠. (이곳의 글이 덜 소중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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