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Oct 08. 2024

줄이고 줄여서 무엇이 남을까

"90분 확대 편성까지…‘이친자’ 한석규, MBC 히트작 만드나" 라는 오늘자 해드카피를 읽는다. 이친자라… 미친 자의 오기인가, 미천자인가, 이 친한 자식인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몇 줄 읽어 내려가보니 '이친자'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드라마고, 주인공은 한석규란다. 처음 든 생각은 뭘 이렇게까지 줄이나, 였다.


안다. 한 번 보고 외우라고, 쉽고 빠르게 익숙해지라고, 잊지 말고 화제로 삼으라고 세 글자로 짧게 줄였다는 것. 하지만 모른다. 이친왕은 알 것도 같은데 이친자는 생경하다. 첫 글자만 딴 것도 아니고 첫 글자+첫 글자+끝글자라니, 반칙 아닌가. 이게 처음은 아니지.


사내연애 수칙 중 하고 싶은 사랑고백을 암호로 정하는 경우가 있다, 제법 많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들키니까 사, 하기도 하고. 그건 너무 속이 빤하니 사과, 혹은 물, 귤 뭐든 연인 간의 하나의 단어로 새로운 문법을 제정한다. 아무도 모르게 즐겁고 행복하겠다.


그렇다면 '비안다'를 알아맞혀 보십시오. 힌트를 드린다면 첫 글자 첫 글자 끝글자 조합입니다. 비상하는 안전한 기구입니다, 비겁하게 안으면 안 됩니다, 비싼 안과는 안 갑니다, 비주류인데 인가 난 학원입니다, 비실비실이 안된다면 환불해 드립니다, 이건 뭐 엉망진창 대환장. 정답은 나만의 것, 그것은 '비가 안 옵니다'라고 말하면 웃기지도 않겠지.


이친자는 드라마 당사자들에겐 가능한 별칭이다. 주인공 이름, 그것도 1명의 이름을 알게 된 게 전부인 지금은 지나치게 이르다.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고백자만 좋자고 하는 짓 같다.


줄임말 좋지만 상호 이해가 된 다음의 이야기다. 속전속결로 시청자의 뇌리에 박혀야 하는 것은 알지만 이친 자는 왠지 아쉽다. 하긴 모두들 '느좋' 라니 그냥 느낌 좋다고 하는 게 느낌 좋은데. 역시 MZ는 어려워. (그냥 "좋"는 어때요. 귀여운데)


p.s. 이렇게 약간이라도 분개하기를, 하여 떠들어대기를 바란 것이라면 성공적

매거진의 이전글 새 신발 소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