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무들은 다들 팔백 년은 되었다고 하네!" 나무를 올려다 보고 사진을 찍던 남자가 곁의 여자에게 말합니다. 표지판의 설명에 의하면 오래된 나무에는 공동이 생겨서 속이 텅 비는 수간공동 현상이 빈번하다는군요.
수간공동에 대해 '악천후로 인해 줄기나 가지가 부러지는 등의 상처가 발생하게 되는데 노쇠기에 접어들면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커다란 공동으로 발달하게 된다'는 신문기사도 있네요. (랜드스케이프타임즈, 2015.01.19 이규화)
치유하지 못한 상처로 제 속이 텅 빈 채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나무들을 봅니다. 그렇게 긴 시간 살다 보면 상처가 없을 수 없겠지요. 모든 상처를 이겨내고 사는 게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상처란 완벽히 회복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익숙해지는 일인 것도 같고요. 치명적으로 보이는 상처조차 큰 나무에게는 그렇게 큰일이 아닌 것도 같고요. 나무 곁에 오래 깃들다 보면 상처 또한 제가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고요. 상처가 만들어낸 나무의 외피는 정말로 기묘하게 아름다워서 자꾸 바라보게 됩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을 떠올립니다. 속이 텅 빈듯한 눈빛, 말수는 적고, 미소도 드물지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속을 알 수 없어요. 위로도 응원도 이해도 큰 소용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오래 지나 생각하면 위로며 응원이며 이해를 오히려 받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바로 그 공동의 내부가 오늘 내게 허락된 최대 공간인 것도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