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안경을 썼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기분, 그래도 나를 보고 아무도 놀라지 않기를(부끄러우니까). 그러나 어제 종일 누구도 제 새로운 안경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기존 쓰던 스타일과 많이 다른데 못 알아보더라고요. 안경을 쓴 저는 제 안경을 못 보고, 저를 보는 타인에게는 안경 따위 보이지도 않고.
아니 우리는 타인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는 쪽이 맞을 겁니다. 그러니 라식을 하거나 말거나 안경을 백 개 정도 바꿔가며 쓰거나 말거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인가 봅니다. 이 안경을 쓰면 박경리 선생님처럼 보일 것 같았는데 화장실 거울 속 제 모습은 어쩐지 전영록을 닮아 보이고.
그간 썼던 숱한 안경들이 굴비처럼 줄지어 떠오릅니다. 안경 유행은 느리지만 확연하여 이 안경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의 복귀인데요.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서 보았던 것도 같네요. 전철역에 서 계신 신윤복 시대의 미인에게 권해 보았으나 마다하시는 눈치입니다.
헬멧처럼 거대한 안경, 눈동자 크기의 작은 안경, 모자가 달린 안경, 쓰면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안경은 없을까요? 남들이 나를 못 보게 하는 투명인간 안경은요. 기복이 심한 내면을 숨길 수 있는 안경은요. 제 얼굴이 지루해질 때가 있고요. 그조차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