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는 그래서 쉽고도 어렵다
"UX요?"
한동안은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일이 별로 없었다.
글쎄, 나한테 UX가 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냥 “사람이 쓰기 편한 거요” 정도로 말하고 마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대답한 적도 많았다. 눈에 잘 띄고, 명확하고, 누르기 쉬우면 됐지, 거기에 이름이 뭐가 필요하냐는 생각도 있었고, 굳이 무언가를 정의해야 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나는 ‘그냥 이렇게 하면 좋지 않아요?’ 같은 말을 하는 데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던 시절을, 제법 오랫동안 지내왔다. 사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주니어 시절을 지냈는지도 모른다.
당연하 그런 말이 더 편하다. 어렵게 말하면 괜히 지식 자랑에 가식 같고, 무엇보다 ‘UX적으로 보자면요’ 같은 말은 왠지 조금 오그라든다. UX적...실제론 존재하지 않지만 얼렁뚱땅 현업에서 만들어 낸 그럴싸한 판교 사투리같은 표현. 회의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저 사람 UX를 진짜 아는 걸까, 아니면 UX라는 말을 또 들어온걸까’라는 엉뚱한 의심이 먼저 들던 시절이었고, 아무도 그걸 직접적으로 캐묻진 않았지만, 어딘가 살짝 '비전문가의 뇌피셜 대잔치' 같아 우스꽝스러워지는 분위기가 되어 버리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뉘앙스만으로도 아는 척은 할 수 있었고 그러면 일단 그 자리는 무사통과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나도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피그마 화면을 공유하고 누군가 내 디자인을 보며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가 따로 있어요?”라고 묻는 순간, 나는 약간은 당황한 상태로, 하지만 뭔가는 말해야 하는 긴박함에 기대듯이 “UX 플로우를 고려하면...사용자가 여기서 명확하게 정보를 인식해야 하는 부분이라서” 같은 느낌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고,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되네' 하는 깨달음이 그 순간 왔다.
그 뒤로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말을 더 자주 꺼내게 되었다. 이게 처음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쉽더라. 처음엔 약간의 뻘쭘함과 위장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이 말은 내 말이 되었고, 나는 UX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마치 어디선가 주워들은 외국어를 자꾸 말하다 보면 그게 내 말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말을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게 되었고, 그걸 들은 사람들도 그 말에 대해 굳이 따지지 않게 되었으며, 그렇게 나는 ‘UX적으로 보면요’라는 접속사를 단 문장을 회의마다 하나씩 장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UX며드는건가.
물론 처음엔 그 말이 가지는 무게를 몰랐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 말을 쉽게 어딘가에서 대출받아 마구잡이로 쓰곤 했다. 그냥 말장난처럼, 조금 있어 보이는 언어처럼 쓰이기도 했고, 사실 나조차도 UX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그 단어를 쓰면 대충 ‘사용자를 고려한 설계 같은 것’이라는 분위기는 전달된다는 걸 알았기에, 다소 느슨하고 막연하게 그 말을 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초기 커리어는 근거 없는 확신과 약간의 허세, 그리고 말장난에 가까운 방어기제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웃긴 게 자꾸 쓰다 보면 생각이 따라가게 된다. 원래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는 명제도 있지 않은가. ‘UX적으로’라는 말을 쓰다 보니까, 진짜로 ‘UX적으로는 이게 맞나?’ 싶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사용자는 과연 여길 누를까?’, ‘이 라이팅이 충분히 명확한건가? 다른 표현 없을까?’, ‘이렇게 흐르면 사용자가 여기서 막히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말을 빌려 쓴 게 아니라, 그 말이 나를 조금씩 데리고 갔던 셈이다.
예전에는 UI가 예쁘면 내 만족감이 제일 컸다. 그 예쁨의 기준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거의 본능 같은 것이었고 주관의 영역이었다. 브랜드 디자인이 중심이었을 때는 디자인은 설득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예쁘다고 믿는 것에 대해 타인을 설득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취향은 존중하니까.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예뻐도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따라붙어야 하고, 그 설명의 언어는 점점 더 복잡하고 정돈된 단어들로 구성되기를 요구받는다. 버튼의 위치, 문장의 길이, 전환 플로우의 단계 수, 피드백의 시점과 방식…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숫자와 근거를 동반하면 더 좋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사용자 입장에서’라는 말이라도 붙여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바로, UX다.
UX는 그래서 쉽고도 어렵다. 말은 쉬운데,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매번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UX라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는 있지만,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한 개념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말을 꺼낸다. 마치 누군가 앞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처럼, 약간은 경건하게, 때로는 약간은 장난스럽게, 하지만 결국엔 그 말을 꺼낸다는 건 ‘이건 좀 신경 써서 해보자’라는 시그널을 주는 일이다.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나는 ‘이게 왜 사용자를 위한거냐’ 라는 질문을 받을 준비를 해야 했고,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어디서 들어본 말들을 붙이면 됐지만, 이제는 사용자의 맥락에서부터 내 의견을 시작해야 했고, 그 내용에는 내 나름의 경험과 관찰과, 수많은 A/B 테스트 실패 사례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야 했다. UX라는 말은 그래서 내가 해왔던 디자인을 정당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빌려온 그 말에 정당한 값을 붙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머뭇거리게 된다. 나도 안다. 그렇게 말하면 가볍고 얼마나 좋은지. 차라리 얕게 배운 디자인 원칙을 걸고 넘어질 바엔 그게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새 나는 그 말 한 줄에 책임을 지게 되었고, UX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는 ‘그저 그런 느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납득 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UX라는 말은 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디자인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사용자의 입장에서 이걸 써보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내가 그 상상을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사용자가 정말 그렇게 행동할까 의심하기도 했고, 그래서 동료와 싸우기도 했고, 다시 실험하고 엎고, 또 엎고, 마침내 누군가에게 ‘잘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도 ‘근데 진짜 잘한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이, UX라는 말을 처음 입에 올린 날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말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도 UX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쓴다. 이제는 회의에서도, 문서에서도, 슬랙에서도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되었지만, 내가 감히 그 단어를 입에서 처음 꺼냈던 날의 어색함과 약간의 거짓말 같은 기분은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 말을 통해 내가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에게도 더 명확해졌고, 명확해지면서 더 나은 판단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은 내가 조금 더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데 필요한, 약간은 쑥스럽고, 때로는 진지하고, 하지만 꽤 괜찮은 진화의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