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경청
우리는 자기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욕구와 느낌을 잘 전달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하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면 연습할 필요가 있다.
나의 바람을 얘기할 줄 알아야한다.
성격이라 간주하며 안일하면 안 될 일이다.
나이를 잘 먹는 것에는 우리가 흔히 취하고자 하는 지혜로움과 미덕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갖추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잘못된 경청을 하지 않는 것, 공감 없는 경청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전의 앞면만 보고 행하는 부작용이 참 많다.
공감을 하라고 강조하니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에게 공감만 하고 동전의 뒷면을 설명하지 않는다.
경청하는 것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 듣기만 하고 “그렇구나”, “아~” “힘내” 영혼 없는 말만을 내뱉는다. 나의 경험이나 이야기, 반응이 없는 경청은 되레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공감없는 경청은 그저 영혼 없는 ‘벽’과 같은 것이다.
많은 좋은 이야기와 좋은 책, 좋은 강의를 듣기만 하는 것과 같다.
듣기만 할 뿐 적용하지 않고, 연습하지 않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지했다면, 그럼에도 성격 탓으로 돌리며 잘 되지 않는 다면 연습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조차도 생각이 없다면 정말로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기에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비전문가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아는 사람이 여럿인데 달랑 커피 두 잔을 사온다.
그 한잔을 받아먹는 사람도 불편하다.
관계 안에서 주변을 챙기지 못한다.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표출한다면 다행이다.
한껏 표시만 나게 할 뿐 주변을 불편하도록 만드는 유형은 그야말로 불편한 기류를 형성한다.
표현하지 못할 바에야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숨기는 편이 낫다.
이 모든 것이 공감능력과 관계가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살피며 슬쩍 얹혀 간다.
내 멋대로 하라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차려놓은 밥상에 늘 숟가락 올리듯 묻어가는 행동에 신물이 나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연중행사로 몇 번 보는 관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매일 보는 직장 동료나 가족, 친척 가운데 이런 유형이 있다면 주변은 짜증나기 십상이다.
당연히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는 내 마음을 줄 수 없다. 윗사람이라면 기댈 수 없을 것이고, 아랫사람이라면 챙겨 줄 수 없다. 친한 관계라면 더욱이 어떤 것도 나눌 수 없는 상대가 될 것이다. 서로 어떤 의지도 되어주지 못할 테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과의 관계에는 일방적인 관계를 맺다가 지칠 것이다. 여전히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일지 않을 것이기에 되도록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간혹가다 안부 정도 묻는 사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되레 이런 관계에서는 관계 맺기가 수월할 수도 있겠다.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응답하라 1988에서는 이런 장면이 있다.
덕선이는 양보와 희생의 화신이라고 할 만큼 착한 딸로 나온다.
언니는 서울대에 다녀서, 막내는 아들이라서 받는 것들이 있다. 반면 덕선이는 둘째에 늘 꼴찌근처에 있다. 언니랑 생일차이가 얼마 안 난다는 이유로 언니의 생일파티를 한 케이크를 재활용해서 덕선이의 생일파티를 한다.
“나도 내 케이크 받고 싶어” 이것이 자기주장이다.
그런데 다음해 또 이런 흐름으로 생일파티를 한다.
“나도 얘기했잖아! 내 케이크 받고 싶다고. 나도 계란후라이 좋아한단 말이야.”
원하는바 욕구에 대해 얘기한다.
아버지는 덕선이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한다.
몰래 케이크를 사서 파티를 해주고 아빠가 처음이어서 잘 몰랐다며 용서를 구한다. 본심, 진심을 전하면서 용서를 구하면 공감의 대화와 연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바로 이런 경우에 공감 없는 그냥 듣기는 되레 안 하는 편이 낫겠다.) 사람에게는 나와 너, 우리의 관계로 경험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당당한 전달이 필요하다.
내가 나의 권리를 요구하는 습관을 만들고 당당하게 전달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멋대로 똥고집을 부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내 감정을 꺼내 놓는 건 중요하다.
눈치보고 주눅 드는 사람은 나와 너, 우리의 관계를 많이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다.
당당하게 꺼내놓기가 힘든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할까, 평가할까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행동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결국 거리두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이토록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과의 인연을 가까이 두고 있다면 멀리 두는 것이 시간 낭비를 안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서로 의지가 되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관계에서 안 되는 것에 애쓰지 말자.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되는 것에 정성을 들이고 깊고 높게 쌓아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