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좋다
스스로 ‘지금이 제일 좋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20대에는 열정이 최고조일 시기이므로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즐겁게 해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점심시간 김밥 한 줄로 배를 채우면서도 출근 전 새벽 시간, 퇴근 후 저녁 시간까지 하루 4시간씩 요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직장과 요가 강사를 병행하기도 했다. 그저 재미있었다.
그러나 함정이 있었는데 나는 열정이 오래 가지를 못하는 금사빠였다.
그렇게 2년 넘게 요가에 빠졌다가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찾았다.
다른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도 여럿 다녔다. 그렇게 금사빠였지만 잘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괴로웠다.
어떻게 해야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괴로움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살았다. 발버둥을 치고 내가 노력해도 되지 않는 현실에 체념한 듯 시간을 보냈다.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렇게 무기력해진 나는 어떤 것을 할지도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방향을 잃어 멍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힘든 상황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에 치는 발버둥도 이내 잦아들었다. 그대로 나를 놓았다. 자포자기라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구나. 그렇게 나이 들어 빨리 할머니가 되기를 바랐다.
둘째 아이는 학교 학습을 따라 하기 어려워했다. 아이가 초등 1학년 겨울 방학 수술을 하고부터 나는 아이와 같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그저 버티는 중이었다. 견뎌내는 중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매일 매일 눈물을 삼키며 견뎌낸 시간들이었다.
이제 초2, 이제 초3, 이제 초4 이렇게 더딘 초등학생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며 매일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를 꼭 잘 키워내고 싶었다. 그 마음밖에 달리 어떤 마음도 갖지 못했다. 아이와 마주보고 앉아 공부를 했다. 하기 싫어하는 아이, 5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와 매일 전쟁을 벌였다. 처음부터 마주보고 공부를 한 건 아니었다. 가르쳐주고 과제를 주었다. 나는 다른 해야 할 집안일을 했다. 내가 보고 있으면 아이는 그런대로 해냈지만 내가 등을 돌리고 혼자 하도록 분량을 정해주면 엉망진창 이었다. 그러면 또 아이를 혼내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엄마도 할 일이 있는데 네 앞에 앉아서 너만 봐줄 수 없다며 다그쳤다.
나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바로 바로 해야 할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내내 해야 할 일 생각뿐인 나는 그야말로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는구나 싶었다.
더디고 더디지만 그 안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이 만큼 자랐다는 것과 내가 해냈다는 것이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모든 건 내가 생각하기에 달려있다라는 말을 절절하게 경험하니 두려운 거 하나 없어졌다.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그것들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나를 잃어버렸었구나. 나를 사용하기만 했구나.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매달리는 심정으로 나 돌보기를 했다. 나를 돌보면서는 모든 게 달라졌다.
남들의 시선, 그들의 오해와 생각들은 내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내 소신대로 걸었다. 더 이상 어떤 시선과 눈치는 보지 않는다.
올해 7월 달부터 현재까지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난다. 5시에 미라클 모닝 챌린지를 하고, 6시부터는 글쓰기 스터디에 참여한다, 밤에 일찍 잠자리에만 든다면 새벽기상을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미루는 것을 못 한다. 해야 할 일을 꼭 바로 해야만 하는 이 성격이 가끔은 스스로 달달볶는구나 싶지만 그래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니 어쩔 수 없다.
고요한 새벽시간 나를 돌본다. 아침 일과 시간과 겹쳐 한 시간 온전히 글쓰기 스터디를 하지는 못하지만 매일 30분, 40분이 쌓여 주 5일 최소 150분이 된다. 일요일 새벽에는 3시간 글쓰기 스터디에 참여하니 일주일에 330분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씻는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6시 30분에 욕실을 쓴다. 우리 집 반려견 포도 밥과 물을 챙긴다. 6시 50분이 되면 아침밥을 차리고 7시가 되면 아이들이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는다. 아침 식단은 항상 같다. 계란프라이, 김, 김치, 밑반찬 한 가지 정도이다. 나는 몇 달째 사과 먹기 습관을 유지중이다. 8시가 되면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다. 청소를 하고 8시 30분쯤 되면 포도와 산책을 나간다. 계절에 따라 산책 일정은 달라진다. 더운 여름에는 이른 아침에, 추운 겨울에는 낮에 챙겨서 한다. 포도와 산책하는 이 시간은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30분~1시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확인해 본다.
주로는 전날 저녁에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메모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적어보면서 챙긴다. 해야 할 일, 구매 할 식재료, 온라인으로 주문해야 할 것 등을 적는다.
틈틈이 볕을 쬐며 동네 구석구석 걷기를 즐기고, 아이들 덕분에 습관이 되어버린 공부를 한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게며 듣는 노래는 이제 힐링타임이 되었다.
코로나 시기, 그렇게 아이들과 마주 앉아 공부를 하고 이룬 것이 제법 많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2년 전 30분 앉아 함께 책 읽기를 시작으로 지금은 40분 하는 게 나와 아이들이 마주 앉아 하는 학습의 전부이다.
나는 이어서 해야 할 공부를 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강요 하지 않는다. 이어서 쭉 엄마와 마주 앉아 공부를 더 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40분을 맞춰둔 타이머가 끝나면 벌떡 일어나 해산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요양보호사 자격증, 치매전문 자격, 행동분석 심리상담사 자격증, 브런치 작가, 글쓰기 스터디, 독서 모임, 지금 진행 중인 또 다른 공부 등 이렇게 차근차근 2년의 시간을 보냈다. 2년 사이 나는 잃었던 자존감을 회복했고 아이들과 마주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
2023년도 기대가 된다.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이 곁들여 지겠지만 2023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