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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Apr 21. 2024

154. ‘노예(奴隸)’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54

노예(奴隸)’란 다른 사람의 소유권 하에 놓아져 강제로 부림을 당하는 사람을 뜻한다. 국제연맹에서는 소유권에 관련된 권한의 일부 또는 전부가 행사되는 사람의 상태 또는 조건(the status or condition of a person over whom any or all of the powers attaching to the right of ownership are exercised)’로 정의하였다. 현대 문명 사회에선 형벌이나 군역을 제외한 강제 또는 무임금 노역은 곧 노예제로 본다.

奴(종 노)는 女(여자 녀)와 又(또 우)가 합쳐진 한자로 포로로 붙잡아 복종시켜서 부린다는 의미에서 ‘사내종’, ‘노예(奴隷)’를 뜻한다. 隷(종 례)는 본 자가 隸인데 뜻을 나타내는 隶(미칠 이)와 소리를 나타내는 柰(능금나무 내)가 합쳐진 한자로 ‘붙잡다’, ‘종’, ‘죄인’의 뜻을 지니고 있다. ‘노예(奴隸)’에서는 ‘례’가 아닌 ‘예’로 읽는데 이는 속음이다. 예로부터 두 음이 함께 사용되어 한자어에 따라 ‘예’로 읽고 쓰는 것도 많이 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노예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고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노예의 종류와 대우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처음 노예들의 삶은 인간이라기보다 가축에 가까운 생활로 비참했다. 심지어 주인이 마음대로 죽여도 처벌하지 않을 만큼 죄가 되지 않았다. 주인이 노예를 죽일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주인은 얼마든지 노예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다 만민평등 사상에 따라 노예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개선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냥 인신의 자유가 없는 사람을 노예라 칭했고 하급 노동자뿐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학자와 기술자도 많았다. 심지어 귀족 자제를 가르치는 노예 강사, 그리스 상업인, 건축, 미술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다만 로마에서 노예는 주로 그리스인이었다. 

일본군이 운영한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의 일종이며 전쟁을 수행하며 국가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현대에도 암암리에 행해지기도 한다. 이후 농노, 노비, 머슴의 형태로 조금씩 자유롭고 윤택한 삶을 보장하면서 발전해 왔다. 조선시대의 환관 역시 넓은 범주에서 보면 군주가 부리는 노예라 할 수 있다. 다만 궁중에 있다는 이유로 천민 취급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군주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환관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환관들이 엄청난 권력을 갖는 경우도 많았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로마 제국에서 젊은 남성 노예를 검투사로 부렸고, 지금도 전투를 위한 모병을 하는데, 일시적인 노예 신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금 완전히 폐지된 과거의 노예가 아니라 현대판 노예의 등장이다. 현대판 노예의 정의는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잃은 사람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현대판 노예는 어쩔 수 없는 상황과 환경 때문에 누군가의 강요와 협박이 아닌 자발적인 복종으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자기가 정말 좋아서 동경의 대상으로 삼으며 노예를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 욕망의 대상이 되는 돈, 권력, 명예, 사랑 등에 목매달며 과한 집착을 하는 삶을 ‘노예의 삶’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사람이나 물질 등에 길들어 어느 정도 노예 상태로 살고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사실은 사람과 다양한 시스템에 길들어 있다. 여기서 사람은 돈, 권력, 등의 힘이 있는 사람이나 윗사람 등이 있고, 시스템에는 학교, 회사, 사회, 국가와 명품, 핸드폰과 같은 물건도 있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 나오는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라는 상태가 나는 너의 현대판 노예가 되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는 누가 시켜서 혹은 남들이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타인이 정답으로 지정한 삶을 살며그런 패러다임에 의심하지 않고 순응한다시스템을 극복하고 새로운 창조자가 될 가능성을 포기한 채 자발적으로 시스템에 길들어지고 지배받기를 바란다. 입시, 취업 등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실패했을 때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외면받고 거절당하는 것의 비참함을. 이렇듯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공포심은 이미 설계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당연히 우리는 여기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며 자유를 내려놓게 된다. 기꺼이 복종하고 길들어지기를 원하고 점점 시스템에 잘 길들어진 노예로 변해가며 다들 이러고 산다고 합리화한다. 수많은 현대판 노예의 탄생이다. 고백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이러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어쩌면 누구보다 시스템에 잘 길들어진 현대판 노예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현직에서 벗어나 퇴직 생활을 하는 지금의 삶이 나의 존재를 사랑하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진정한 나로 살고 있다.

자본주의 탐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집착하는 것이 노예가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분야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 돈, 삶의 목적이 된 돈, 경제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돈의 노예가 된 거꾸로 된 세상에 살고 있다. 권력과 명예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자식, 부모, 연인 등)에게 집착한다는 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들의 불행은 대부분 남을 의식하는 순간 안정된 기분은 흐트러지고 불안이 나타난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남의 시선이나 평판의 노예일 뿐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주인이다. 노예는 늘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깊고 더 한 애정의 표현으로 난 당신의 노예야라고 말한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당신의 노예라고 표현하는 속에는 집착하고 있다는 말이다. 얼른 고무신 바꿔 신을 준비를 하는 게 좋은 듯. 지나친 욕망과 집착이 현대판 노예로 가는 길목이다

부와 권력, 명예를 통한 자유를 위해 시스템에 고개 숙이며 길들어진 삶도, 그 시스템을 벗어나서 보니 별것 아니고 허망한 시간이었다. 권력과 명예는 자리가 주는 것이니 자리에서 떠나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것은 당연하며, 그 좋던 돈도 별 쓸 곳이 없다. 남(배우자, 자식 등) 좋은 일만 하고 산 격이다. 진정한 내 돈은 내가 번 돈이 아니고 내가 쓴 돈이라 하지 않던가.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현대판 노예가 됐던 것은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회사의 경우, 현대인이 자발적 노예로 전락하기 쉬운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다. 회사에 가축처럼 길들어진 사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회사원은 다달이 지급되는 월급에 중독돼 쉽사리 줄을 끊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현대판 노예가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도 회사라는 시스템에 최적으로 길들어진 노예이다. 마땅한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정말 일이 생활의 전부인 워커홀릭들이다. 요즘 기업과 임금 노동자 간의 고용 계약을 노예 계약이라 하지 않던가. 실제 연예계에서 노예 계약이 많은 문제를 낳고 비극적인 사건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에 지나치게 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눈을 떠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노예는 쇠사슬과 채찍의 무서움 때문에 주인이 원하는 일을 했다. 반대로 우리 시대의 노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자본이나 국가가 원하는 노동력이 되고자 한다. 고대의 노예가 목에 나무판을 달고 노예시장에 끌려 나왔다면,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예는 자기의 목에 스스로 스펙이란 목걸이를 걸고 나온다스스로 자신의 쓸모를 열심히 홍보해서 선택되어야 노예라도 될 수 있다스펙은 목숨 건 상품 명세서 목걸이인 셈이다. 고대의 노예들은 틈만 나면 주인의 눈을 피해 꾀병을 부리고 태업하며 자유를 향한 탈출을 꿈꿨다. 오늘날의 노동자는 주인(자본가)이 ‘너는 필요 없어, 해고야’라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온몸을 바쳐 일한다. 꾀병이나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신세다. 회사를 벗어나서는 먹고 살 수 없어 생존에 타격을 받는다. 노예가 타율적 복종이라면 노동자는 자발적 복종노예가 출퇴근할 수 없는 노동자라면 노동자는 출퇴근하는 노예이다.

 남이 하라는 일을 하면 노예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주인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지혜롭고 올바로 수행할 때,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에 속한 일로 착각하지 않고 초연할 때 일의 자유로움이 얻어진다. 모든 속박이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 영혼과 자유를 찾아내고, 물질적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선택이다. 결국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일수록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일 것이다.     

현대판 노예들이여~! ‘인생은 정말 짧고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일만 하고 살기에도 삶이 짧다.’라는 말에 유혹당하지 말자. ‘사랑하고 즐기기에도 인생은 짧다.’라는 말 명심하고 내 영혼의 주인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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