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70
‘과시(誇示)’는 ‘자랑하거나 뽐내어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자기와 관련되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행위인 자랑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자랑질’은 ‘자기 자신이나 사물 따위에 대해 남에게 좋은 것이라고 드러내어 뽐내는 짓’인데, 자랑하는 것이 좀 쑥스럽고 어색할 때 낮추어 사용한다.
과시는 자신의 장점이나 성취를 지나치게 드러내고 강조하는 행동이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명품을 과도하게 드러내거나 높은 성적을 자랑하는 행동 등이다. 과시는 자기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상대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행동이 역효과를 초래해 오히려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보다 더 잘난 척하거나 없는 능력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행동을 ‘허세’라 하는데, 과시와 다른 점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시와 허세를 구분하지 않고 쓴다.
사실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런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자기를 자랑하거나 뽐내는 과시는 당연하다. 자연계 동물의 수컷들이 장식하는 깃털이나 영롱한 목소리로 뽐내는 노래가 모두 과시이고 자랑질이다. 이렇게 자랑질해야 암컷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있다. 수컷의 삶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과시와 자랑의 연속이 전부인 셈이다. 목도리도마뱀, 복어와 같이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신체의 일부를 부풀리어 상대를 속임으로써 살아남기도 한다. 이렇게 과시하지 못하면 진화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 과시와 자랑질은 동물의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너무나 당연한 진화의 산물이고 본능이다. 이렇게 자기 DNA를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한 성선택은 본질적으로 자기과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경쟁이 심해지면 수컷들도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하는 데서 문제가 있다. 과한 장식이 도리어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사회에서도 과시와 자랑은 본능에 가깝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행동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에게 나를 알려야만 하는 살아남는 자기 PR(Public Relations)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SNS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제 일을 공개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과시와 자랑, 허세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간사회의 어디를 둘러봐도 진솔한 본모습보다 포장, 치장, 분장한 모습만 보이는 가히 과시 사회다.
겸손과 겸양이 미덕이었던 인간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내가 가진 것을 과시하여 짝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동물을 닮아간다고 하면 과한 말일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 타박하겠지만, 옛날에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고 사회 분위기였던 시대도 있었다. 어쩌다 집에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집 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분에 넘치는 물건을 뒷방으로 감추던 시절이었다. 있어도 없는 척하는 행동이 존경받았던 우리가 지금은 완벽하게 반대가 되어 없어도 있는 척해야 알아주는 시대가 되었다.
남들을 주목하는 사회가 되면서 ‘남들을 저런 데 나는 왜 이렇지?’하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어 더욱 나를 과시하고 뽐내는데 빠지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인 인간의 경우 과시와 자랑을 너무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상대가 눈치채게 되고 ‘재는 가진 것도 없는 놈이 있는 척 자랑질만 해’라며 등을 돌리게 되고 과시의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양치기 소년’이랄까. 자랑질도 지나치면 병이다.
타인의 과시를 보고 듣는 처지에서 질투와 시기를 느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당연하다. 다만 그러한 감정이 과하지 않게 적절한 부러움으로 삼으면 나에게 삶의 좋은 동기부여와 원동력이 된다. 또한 타인에게 과시하는 것도 본인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과하면 타인에게 심각한 열등감, 자기 비하나 혐오, 시기나 질투를 일으켜 인간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 같은 과시라 해도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대에게는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자기가 성취한 것에 대한 과시는 이해하기 쉽지만, 자기가 이룬 것도 아닌 부모, 자식, 친척, 친구 등의 성과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꼴불견이라는 평을 받기 쉽다. ‘부인 자랑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팔불출(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 만에 나와 어리석음)이라도 나이 든 노년의 모임에선 부인 자랑은 사라지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자식 자랑이다. 가족 자랑하는 것쯤이야! 어느 정도 봐줄 수 있지만, 친구나 사돈에 팔촌까지 팔아가며 자기과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보면, 자기가 빈 깡통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친구에게 물타기 해 묻어가고 싶은 심리가 어쩐지 짠하고 안쓰럽다.
자기 존중감이 부족하고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사람은 행동 하나, 말 한마디, 옷 입는 것, 들고 다니는 가방, 타고 다니는 차, 사는 집, 다니는 직장이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받기 위한 자기과시 수단이 된다. 명품 가방이나 호화로운 식사, 화려한 옷차림에 과감히 돈을 지출하는 이유도 과시하기 위한 소비이며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과시하는 것도 많은 사람에게 인정과 부러움을 얻기 위해서다.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가방을 들고, 무슨 차를 타고, 어디로 여행을 가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가 없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런 소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자기과시’이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탐닉하는 인정중독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러한 자기과시 소비에는 ‘자기만족’은 없고 주변 사람의 인정과 부러움을 탐닉하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내 삶을 희생하는 것이다. 흔히 내가 좋아서 한다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실 그러한 물건이나 소비 자체가 아니라 그 물건이나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타인의 인정일 뿐이다.
자랑하거나 뽐내기 위한 소비 행위를 ‘과시적 소비’라 한다. 자신이 특정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을 상징하여 보여주기 위한 소비 행위다. 눈에 잘 띄고 사치스러움 물품(명품 가방, 고급 차, 보석 등)을 구매하여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더 높거나 부유하다는 인상을 주고자 한다. 이들 상품이 구매자의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명찰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명품 시장이고 명품 매출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유명하고 좋은 물건을 좋아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하랴. 하지만 경제력이나 인구 측면에서 우리가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기에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명품 시장에서 나타나는 ‘베블런 효과’는 제품의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소비자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이는 상품의 가격이 높아지면 그 상품이 더욱 고급스럽고 배타적으로 보이게 되고, 소비자들은 그러한 살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심리적 동기 때문에 발생한다. 베블런 효과 역시 사치품이나 명품과 같은 고가 제품에서 흔히 관찰된다.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증가하는 수요-공급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독특한 현상이다. 원가가 8만 원인 가방이 명품이라는 레벨로 380만 원을 해도 줄을 서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베블런 효과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명품 회사들의 상술에 넘어간다고 말하면 과한 해석일까?
과시는 단기적으로는 자신감을 높이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진전한 자기 모습을 숨기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 인식을 높이고, 진정한 자아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수용과 자존감을 높이면 외부의 인정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중할 수 있다. 또한, 건강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면 과시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과시를 줄이면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더 진솔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이 삶을 즐거운 것들로 채우려 노력하지만, 삶은 즐거운 것들로만 채워질 수 없기에 행복은 늘 신기루처럼 느끼고 마음은 허전하다. 그 허전함을 채우는 것은 명품 가방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고, 명품 옷의 겉치레가 아니라 허전한 마음을 바르게 채우는 일이다.
오늘도 명품 판매장에서 줄서기보다 마음을 채워줄 책 한 권이라도 들고 다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