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74
‘충고(忠告)’는 ‘남의 결함이나 잘못을 진심으로 타이르는 것’을 말하고, 특히 말로 타이르는 행위를 ‘충언(忠言)’이라 한다. 조언(助言)은 어떤 사안에 대하여 돕거나 깨우쳐주는 말이고, 충고는 어떠한 잘못이나 결함을 지적함으로써 도움을 주려는 행위다. 충고가 좀 더 구체적이고 강경한 느낌이다. 충고나 조언 모두 듣는 당사자로서는 받는 느낌이 다를 수 있고 짜증 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늙은이, 선생 등의 은어로 ‘꼰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서 어른들의 섣부른 충고나 간섭을 ‘꼰대질’이라 한다. 기성세대가 자기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꼰대질은 젊은 세대의 혐오만 낳고 오히려 반발심만 사서 더 나쁜 효과를 가져온다. 꼰대질로는 청년들의 각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오래전 공중파 방송에서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잔소리에 짜증을 내는 초딩 아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넌 잔소리와 충고도 구분 못 해?”
초딩 아들이 답을 한다.
“잔소리는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
어느 초등생의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다. 그러면 충고는 하지 않을수록 좋단 말인가? 감히 누가 주제넘게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충고한단 말인가.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내 문제도 내가 가장 잘 안다. 다른 사람의 충고가 유익하지 못한 이유라 항변한다. ‘이게 모두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먼저 경험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조언이나 충고는 꼼꼼히 듣고 나면 꼰대질인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럴 때는 진심이 담긴 위로가 필요한 시점일 때가 많다. 위로할 때와 조언할 때의 구분을 잘하라는 뜻이다. 구분하지 못하니 충고의 말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어제보다 꼰대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칭찬과 긍정이 늘어 가면 ‘어른’이 되고, 비난과 부정이 늘어 가면 ‘꼰대’가 되는 법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잔소리든 충고든, 초딩이든 어른이든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기분 나쁜 소리다.
인간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분명 충고가 필요한 상황도 존재하는데, 특히 사람과 친해지면 눈치 보느라 마땅히 해줘야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을 위한다면 적당한 감정적 거리를 두되 솔직하게 말을 할 수 있어야 관계가 더 깊어진다. 즉,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적당히 충고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충고를 주고받을 관계가 아니거나 원하지 않는 충고를 하게 되면 잔소리나 오지랖처럼 느끼게 되어 오히려 인간관계의 독이 된다.
그렇다면 타인의 충고나 조언, 쓴소리는 불필요한 것인가? 한 번쯤 들어두면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소중한 말들이 꼰대질이라는 명목으로 너무 폐기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충고는 하지도 듣지도 말자’라는 세대에게 한마디 했다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선배나 꼰대로 남을 게 뻔한데 감히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도움의 말을 줄 수 있겠는가. 신중하고 지각 있는 선배들의 진심 어린 충고가 점점 듣기 어려워지는 시대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가끔, 젊은 시절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쓴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건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고 누군가의 충고나 조언에 따라 바뀌지도 않으니 충고해 주는 사람도 줄어들고, 해주는 충고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게 사실이다.
물론 그 누구의 충고가 없어도 자기 소신껏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잘 이끌어가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거슬리는 말에 귀를 막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자기만의 성안에 갇혀 아집으로 똘똘 뭉친 진짜 꼰대가 된 사람도 있다. 이러니 꼰대가 되기 싫은 마음에 의식적으로 충고나 조언을 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남에게 충고하지 않으면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간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행위가 꼰대가 되어가는 지름길이다.
뼈아픈 충고가 뼈아픈 상처가 되면 안 된다. 시도 때도 없는 충고로 꼰대가 되지 말고, 상대가 도움을 청할 때 적절한 조언을 주는 멘토가 되어야 한다. 충고도 기다림이 있어야 상처가 되지 않고 효과를 발휘한다. 탈레스는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아는 것”,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라 했다. 하기는 가장 쉽지만, 효과를 발휘하기는 가장 어려운 것이 충고다. 충고를 빙자해 타인에 간섭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충고다.
타인의 충고는 그 사람만의 경험담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경험담이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당연히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진짜인 것은 맞지만, 타인의 경험에 고민에 고민을 더하여 배울 수 있는 부분도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삶이다. 꼭 실패를 맛보는 것보다 막을 수 있는 실패라면 미리 막는 게 좋지 않은가. 타인의 앞선 경험들이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우리들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는가.
자기 인생에 대해 가장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는 건 언제나 자신이다. 거기에 타인이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순간, 누군가의 쓴소리가 내 아집을 깨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무척 거슬리는 충고가 기분 나쁘더라도 아주 잘못된 길을 가는 것보단 낫다. 꼭 충고를 거부할 일만이 아닌 이유다. 충고와 조언을 넘어 꼰대질이나 쓴소리라 해도 마음에 문을 열고 한 번쯤 듣는 것도 좋다. 특히 진정한 우정이라면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충고할 수 있어야 하고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충고를 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그만큼 경험의 폭도 넓어진다. 꼭 충고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자세는 늘 필요하다.
시집에서 하는 소리는 듣기 싫은 간섭이고, 친정에서 하는 소리는 듣기 좋은 조언인 것과 같이 누구에게나 듣기 싫으면 간섭이고 듣기 좋으면 충고나 조언이 된다. 충고가 지적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충고의 실력이다. ‘칭찬이 최고로 세련된 충고다.’라는 말도 있다. 충고하지 말라는 충고가 이 시대 최고의 충고인가? 충고 같지 않은 충고가 필요한 시대다.
온전히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 나만을 믿고 살 수는 없을 때 필요한 것이 귀에 거슬리고 입에 쓰지만 충고와 조언이다. 쓴소리와 꼰대질이라 해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살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