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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 Mar 28. 2024

영어권 소설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

백석 또한 그를 사랑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한국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백석이 1938년 발표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일부입니다. 백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요? 그에 관해서 많은 견해가 있지만 백석이 사랑했던 기생 김영한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한데요. 그렇다면 ‘나타샤’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아마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백석은 우리 나라에서 <전쟁과 평화>를 최초로 번역한 인물이기도 해요.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에 능통했던 백석은 톨스토이와 토스토예프스키, 푸슈킨 등 러시아 거장들의 문학 작품을 상당수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의 위엄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는 ‘영어권 소설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입니다. 2007년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출판사 WW 노튼이 미국, 영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의 유명 작가 125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 10권을 물어본 결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1위를 차지했어요. <전쟁과 평화>도 3위에 올랐습니다. 이 작품들은 둘 다 압도적인 분량과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장편소설인데요. 그 외에도 톨스토이는 시와 논문, 신문 기사와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하였습니다. 90권에 달하는 톨스토이의 작품 전집에는 민간 설화와 전설 등을 바탕으로 쓴 단편과 우화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단편을 쓸 때 특히 간결하고 단순명료한 문체를 사용했으며 비유적인 표현들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민중을 포함한 폭넓은 계층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등장인물이 천리안을 가지고 멀리 내다보거나 불탄 나무 기둥에서 싹이 돋아나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들의 주제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어요.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무절제, 탐욕 등을 경계하고 사랑과 자선, 용서와 화해 등 인류 보편적이고 이상적 가치를 그려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족이기를 거부했던, 그러나 여전히 귀족  

 일련의 단편에서 드러나는 톨스토이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50세 무렵에 겪었던 정신적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부모님은 모두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었어요. 톨스토이가 살던 제정러시아 시대에 귀족은 넓은 영지와 저택을 소유하고 하인을 거느리며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지요. 젊은 시절 그는 대도시에서 방탕한 삶을 즐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고향 영지로 돌아와 지주로 살아가는 동안 점차 농노들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는 농노제를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임을 깨닫고 개혁안을 작성하여 정부에 제출했어요.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농노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여는 등 민중 교육에도 힘썼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지주이자 백작이었지요.


 톨스토이가 중년에 접어드는 어느 시점에 그의 내면세계에는 그가 스스로 ‘변혁’이라고 규정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껏 누려왔던 편안하고 호사스러운 생활 방식에 격한 염증을 느낀 것이지요. 대신 ‘손과 등으로’ 노동을 하는 농민의 소박한 삶이 ‘유일하게 진정한 삶’이라고 여겨졌습니다. 1879년에서 1880년 사이에 집필된 <참회록>에 이와 같은 내면의 각성과 변화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880년대에 그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등의 단편을 연이어 썼습니다. 이 작품들에는 지주 아래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농노들이나 매일 끼니 걱정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해요. 이런 가난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내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랑 안에 신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메시지가 톨스토이 단편선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그의 정신적 변화를 반영하는 작품들이지요.


톨스토이즘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살아내고자 분투했던 그의 삶은 소위 ‘톨스토이주의’라는 사상을 빚어내기도 했습니다. 1853~56년 크림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인간의 악한 본성과 러시아의 후진성을 직면하고 깊이 탄식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평생 평화주의 노선을 걷게 한 계기가 되었어요. 프랑스 여행 중 단두대 처형 장면을 목격한 후로는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요.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재고하라!>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도덕적 근원인 종교를 회복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러시아가 믿는 러시아 정교도, 일본이 믿는 불교도 살인을 금하고 있건만 허울만 남은 종교는 현실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1908년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호소문 <침묵할 수 없다!>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요. 특히 악에 대한 그의 비폭력, 무저항 사상은 당시 젊었던 간디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신념들이 바탕이 되어 톨스토이만의 독특한 사상 체계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은 특정 종교와도 구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단편선은 평생에 걸친 구도자적 성찰과 인류애가 잘 녹아있는 작품들입니다.      


톨스토이 단편 영역본 

 톨스토이의 단편은 문체 자체가 쉽고 간결해서 영어로 번역한 책도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유명한 작품이니만큼 원서 선택의 폭도 넓고요. 톨스토이의 작품 다수를 영어로 번역한 Aylmer Maude와 Louise Maude의 번역본이 널리 읽힙니다. 아마존 킨들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어요. 더 쉽게 각색한 책으로는 넥서스 출판사에서 나온 <중학교 영어로 다시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가 있습니다. 우리말 요약을 제공하고 있고 쉬운 영어로 각색하여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랭귀지북스 출판사의 <직독직해로 읽는 톨스토이 단편선>은 끊어 읽기를 위한 표시와 우리말 해석이 같이 달려 있어요. CD와 음원 사용이 가능하고요. <문단열의 영어세계명작> 시리즈에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 있어요. 이 책의 특징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그림으로 만화책처럼 구성된 부분을 앞 부분에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어휘와 관련 문법도 정리되어 있고요. 만화를 넘겨보며 쉬운 영어로 스토리를 이해한 다음 본문을 정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톨스토이의 대표적 단편 몇 편을 소개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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