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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 Sep 09. 2023

인생 처음 매니저 되기 - 1주일 차  

핀란드에서 난생처음 마케팅팀 리드가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지만, 늘 약간의 숙제처럼 느껴졌었는데 이번주 어느 순간에 문득 '아, 이 순간의 경험을 꼭 글로 기록해 놓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치듯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그리고 낮 2시가 넘어서까지 유튜브와 책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둥 마는 둥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난 1주일의 소회 그리고 배운 점들을 기록해 보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간단하게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나는 코덕의 장점을 살려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서 PM으로 시작해서 약 3년 정도의 짧은 근무를 마치고 핀란드인 남편과 함께 핀란드, 헬싱키로 4년 전에 이민을 왔다. 처음에는 Aalto 대학교에서 마케팅 석사 학생으로 자리를 잡았고, 석사를 공부하며 핀란드에 있는 핀테크 회사에 디지털 마케터로 (정확히 말하면 international expansion 사업과 관련해서) 취직을 했다. 지금 같은 회사를 약 2년 반째 다니고 있는 중이며, 꽤나 빠른 승진 아닌 승진을 해서 이번주부터 나포함 4명이 있는 작은 마케팅 팀의 리드가 되었다. (*리드가 되었다고 해서, 원래 내가 하던 업무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실무도 하며 리드도 하는 그런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이다.) 아주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외국인인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싶다. 


지난 8월, 나는 약 4주의 긴 휴가를 한국에서 보냈고, 이번 주 월요일에 돌아왔다. 어찌나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던지,,,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자신이 숨고 있다고 생각하는 타조처럼 그냥 어디로 도망갈 곳이 없으니 땅속에 얼굴이라도 파묻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잘 흘러서 출근날이 되었다. 



타조 증후군 (Ostrich Syndrome) - ‘장두노미(藏頭露尾)’. 위험 속 현실 회피 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표현인데 사실  먹이를 먹는 모습이란다. 섣부른 오해는 금물...

내가 마케팅팀 리드가 되었다고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건 아직 없다. 아마 조금씩 나에게 더 많은 책임과 일들이 올 텐데 첫 주에 내가 느꼈던 부담감은 다음과 같다. 


부담감 1. 갑자기 다른 팀원들의 일도 모두 (그리고 아주 잘) 알아야 할 것만 같다. 

부담감 2. 갑자기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결정을 뿜뿜 내리는 행동력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부담감 3. 갑자기 팀원들의 말을 굉장히 잘 경청하고 지혜롭게 응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정말 저 셋 중의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다. 그동안 남들이 하는 일 얘기할 때는 거의 귀를 닫고, 예예예 하면서 지내왔고 + 결정장애가 심각하게 있어서 가끔은 무서운 일들을 피하기도 했고 + 성격은 또 은근히 불같아서 가끔 혼자 목소리를 올리기도 했다...(그러다가 나 빼고 아무도 안 그러니까 혼자서 다시 조용히 내린다)


아무튼, 갑자기 그동안의 내가 아닌 나가 되어야 할 것만 같아서 매일매일이 너무 부담스러운 하루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얘기들을 하나, 둘 여기 브런치에 적으며 기록해보려고 한다. 분명 처음 해보는 거니까 실수도 많이 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진심을 다해보고 싶다. 그리고 어떤 실수나 실패, 좌절을 하더라도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태도를 갖추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부끄럽지만 기록을 남겨본다. 


/ 2023년 9월 9일 14시 43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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