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글

2023/08/18_오후 2시 7분

by 빈아

더현대 서울의 한 LP 판매점 앞에 앉아 있다. 스피커가 궁궁 울리며 노래가 나오고 있는데, 전혀 시끄럽지 않고 오히려 고요해진다. 소란을 싹 잠재우고 자기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무슨 음악인진 모르겠지만 곧 내 취향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팝업 전시 웨이팅이 길어질 것 같아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디저트 가게들을 뒤적거리다가 그냥 여기 앉았는데, 이렇게 글을 쓰기에 딱 알맞다. 테이블이 없는 게 아쉽지만 의자가 충분히 편하다. 언니 만나기 전에 작업도 끝내야 하는데, 인기 많은 아가들(오늘 팝업으로 만날 캐릭터들이 나에겐 아가들이다) 때문에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도 이따가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다. 아무래도 글을 쓰고 나서 바로 채색 작업도 들어가야겠다. 테이블이 있는 곳을 찾아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참 오랜만에 왔다. 금요일이라 더 많은 것도 있겠지만 이 좋은 스피커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웅성거림이 크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좀 덜할 텐데 자리를 잡고 앉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약 1시간 정도는 떠돌아야 할 듯싶다.


한창 사람들이 LP를 소비할 때 나는 그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감성이 있는 건 인정하나, 관리며, 실용성이며 다 떨어지지 않는가. 근데 여기 앉아 벽에 꽂힌 LP판들을 보니, 틀어보지도 못할 텐데 괜히 소장하고 싶어진다. 그렇다. 소장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소품이다. 우리 세대에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진 못하지만, 알지 못하는 그 냄새를 납작한 네모 판으로 알고 싶게 만든다. 역시 사람은 편견을 가져서 좋을 게 없다.


음악이 멈췄다. 다음 음악을 계속 틀어주면 좋겠다고 쓰려는 찰나, 다시 스피커가 울린다. 아마 꽤 값이 나가는 스피커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저 스피커도 소장하고 싶어지네. 이상한 곳이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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