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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인생, 중간 정산서

독감 딱 그때부터였다. 글이 중단됐다. 이상하게 글 쓰러 앉아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뻔질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두드리는 게 좋다던 내가,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그 시간에 책을 펼치거나 멍을 때리고 있었다. 

나의 글생활에는 주기가 있다. 다다다다 매일 쓰다가 딱 멈춘다. 그리곤 읽는 주기로 넘어간다. 주기가 그리 길진 않다. 그렇다고 아예 안 쓰는 건 아니다. 읽는 주기에도 SNS 등에선 소소하게 쓰는 행위를 멈추지는 않는다. 다만 몰입의 큰 카테고리가 달라진달까. 한동안 매주 연재글을 작성하고, 운영하는 유튜브에서의 책이야기 영상 업로드에 이어 그와 관련된 글을 써서 올렸다. 빡빡한 루틴이 이어졌고, 나름 몸이 고됐나 보다. 평년답지 않게 우리 집 독감 1호가 되어 버렸다. 다 걸려도 나만 굳건히 살아남기도 했었는데. 이젠 만 나이로도 마흔이 되어 가니, 어쩔 수 없나 보다.

꼬박 2주를 제대로 아프고 나니, 루틴이 망가졌다. 일단 주 3회 꼬박 가던 운동을 빠지니 나았던 다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몇 달 전부터 오른 다리가 완전히 굽히려 하면 너무 아프다. 원인을 모르겠다) 몸이 둔해졌다. 심한 몸살을 거치고 나니 안 그래도 없던 근육이 더 빠진 것 같았다.(지방이 늘었거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잠시 기분이 멍해졌다. 이걸 어떻게 복구하나. 글쓰기와 운동만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 공부, 먹거리, 살림, 일 등 일상이 흔들렸다. 몸서리치며 빠르게 터널을 빠져나왔다. 아직 정신은 없지만, 다시 중심을 좀 잡아본다.


몇 년 전 나름의 자기 계발을 시작하며 바쁘게 살기 시작한 때가 생각난다. 처음엔 오히려 돈을 쓰는 쪽이었다. 결혼을 하며 일이란 것을 내려놓고 출산과 육아에만 몰입하다 보니 내가 뭘 할 줄 아는지도 모르겠고, 이전의 삶과의 연결성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새로이 무얼 할까 고민하고 두리번거렸고, 결국 캘리그라피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뎠다. 

'든 것이 없으니 채워야 한다'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는 걸로. 마땅한 취미나 집중할 대상이 육아 외엔 없던 때라 나의 취향을 가득 품고 있는 캘리그라피에 빠져들었고 순식간에 몰입했다. 저렴한 동네 문화센터를 벗어나 더 큰 포부를 갖고 인사동으로 진출했고, 당연히 수강료는 몇 배에 달했다. 살림도 잘 못 하면서 돈을 들여 뭔가를 배우던 그 당시,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 우아하게 화실을 열고, 능력이 된다면 수업도 하고 전시회도 가끔 여는 미래를 꿈꿨다. 남편의 사업은 언젠가 꼭 대박이 날 것만 같았고, 우린 가끔 불 꺼진 방에 누워 두런두런 그러한 청사진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사업이란 게 그리 늘 순탄치 많은 않고, 아이들은 커갔다. '사교육비'라는 것이 발목을 잡았고 세상엔 읽히고픈 책이, 경험시켜 주고픈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봤을 땐 외벌이의 고단한 가장이 매일 옷깃을 휘날리며 출퇴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집안일도 어설프고 뛰어난 것 하나 없는, 돈을 벌기는커녕 쓸 궁리나 하는 그저 그런 아내로 느껴졌다. 집에서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먹이고 입히는 행위와 청소 빨래 요리, 이 모든 전업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큰 벌이인줄 알면서도 그땐 그랬다. 내 기준에도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해주려는, 정확히 말하면 '남편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책을 사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코로나가 슬슬 시작됐고, 동시에 큰아이가 초등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 핑계로 인사동엔 서서히 발길을 끊게 되고, 입학도 못한 아이를 가정학습 시키며 내 힘으로 좋은 책을 원 없이 사들이기 위해 드디어, 소소하게 '일'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로나라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이란 걸 하다 보니 내 성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유명 출판사의 북큐레이터 일이었는데, 해보니 '영업'이란 건 영 어려웠다. 그걸 누가 쉬워서, 좋아서 하겠냐만 아무래도 내 적성은 아니었다. 성과도 별로였다. 결국 그 안에서도 다른 살 길을 찾았다. 유튜브 전성시대를 맞아 북큐레이터 중에서 회사의 '유튜브 진행자'를 뽑는다는 거였다. 

옳거니, 이거 딱 내가 할 일이네. 돌고 돌아 결국 본업으로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짧은 영상 샘플과 자기소개서 등 서류를 제출해 결국 최종 합격을 했고, 그 후 파주에 있는 회사 본사의 천장이 높고 멋진 사옥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본래 결혼 전 계속하던 업이어서 그랬을까. 옷장 깊이 넣어뒀던 내게 딱 맞는 아끼던 옷을 꺼내 입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맞는 건 역시 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 얼마 후부턴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도 러브콜이 와 본격적인 프리랜서로 방송 진행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말이 프리랜서지 그래도 육아와 겸하고 있으니 주변엔 '알바'라고 말하며 집과 일터를 오갔다. 몇 번이나 할까 했던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결국 대학 졸업 후 나의 경력은 결혼과 출산, 육아 중 영유아기 몇 년을 제외하곤 계속 이어지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기간 중 가장 초반인 영유아기, 그 당시가 아이 엄마에게는 체감적으로 가장 길고 지난한 시기이기에. 그때는 그 몇 년이 10년은 훌쩍 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느 아기 엄마를 붙잡고 물어도 그럴 것이다. (물론 아이가 좀 크면 시간이 또 쏜살같이 지나간다. 참 신기하다.)

결혼 후 나의 자기 계발의 역사는 이렇게 돈을 쓸 때와 벌 때로 크게 나뉘며, 다시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겠다. 동시에 최근의 2년은 방송 인터뷰 진행 때 맺은 인연으로 친해진 유명 작가님의 일을 도우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 2년 간의 경력 역시 내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이제 만으로 마흔, 지금까지 경험한 짧은 어른의 기간을 정리해 본다. 스무 살까지는 아이, 그 이후로 어른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거의 반반으로 약 20년씩의 세월을 겪어본 거니 이 마흔이라는 나이가 왠지 꽤 중요한 숫자이자 인생의 길목, 또 다른 시작인 것 같다. 태어나서 스무 살까지의 세월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는데 성인이 되어 지금까지의 시간은 왜 이리 짧은 건지. 앞으로의 나이들도 이렇게, 아니 이보다 더 금방 지나가 버릴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올해 1월 1일, 좋아하는 언니가 카톡으로 링크를 하나 줬다. 새해를 맞아 올해의 성경 말씀을 한 구절 뽑는 거였다. 다시 뽑기도 가능하지만 이런 건 처음 걸린 게 진짜 내가 받는 말씀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내가 받은 성경 구절은 이거였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 잠언 13장 20절




이 링크를 준 언니가 참 지혜로운 사람이었기에, 나의 삶을 많이 바꿔주고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이기에 그랬을까. 단번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딱 공감되는 말씀이 왔을까. 마침 최근 본 SNS 속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무대 위에서 어떤 남자가 2살 정도의 아기를 안고 서서 청중들에게 말한다. 지금부터 박수를 쳐보세요, 그리고 아기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세요. 그러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아기도 덩달아 그들을 둘러보며 박수를 친다. 아직 말도 못 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어린데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한다. (이건 아이를 키워봤다면 자연스레 알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남자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렇게 아이처럼 사람은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고.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그래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사실 영상을 여기까지만 보고 화면이 넘어가는 바람에 뒷부분은 보지 못했다. 그래도 딱 여기까지, 내가 본 부분까지가 내겐 중요하게 와닿았고, 하필 이런 걸 새해 벽두부터 보게 된다고? 성경 말씀도 이런 걸 뽑아둔 마당에? 라는 생각에 그래, 올해 내 삶의 화두는 확실하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자. 라고 박아버리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생각이 많다 보니 하루에도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과 수십 편의 글을 썼다 지웠다 한다. 머리에 떠오른 글감을 바로바로 화면에 옮길 수만 있다면 난 정말 엄청난 작가가 되었을 텐데!(과연) 하필 늘 길을 걷다가, 혼자 사색할 때가 대부분이라 화면은커녕 폰에 옮기기도 버겁다. 그래도 그 생각들이 아니 글감들이 너무 아까워서, 새해부턴 방도를 좀 찾아봐야겠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 나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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