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같은 라인 다른 집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띠띠띠-

익숙한 도어락 소리가 울리자 아이는 온몸으로 웃으며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손과 발을 움직였다. 거실 바닥을 대각선으로 스쳐 지나간 뒤 식탁 의자 밑으로 몸을 숨겼다. 가족들이 한 사람씩 들어올 때마다 숨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는 가만히 있다가도 우다다 바람처럼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곤 소란스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자신을 찾는 것을 기다리고, 그 순간을 즐겼다.

은서는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소파 끝에 걸터앉아 남편을 맞이했다. 평소엔 방학이라 아이들과 부대끼는 게 좋다고, 애들은 금방 크니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다니는 은서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좋다가도 싫고, 힘들다가도 웃게 됐다. 뭐라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애틋하고 징글징글한 사랑의 공동체. 피를 나눈 성장기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으면서도 순간순간 분노와 침의 연속이었다. 남편이 퇴근한 그 시간은 그중 딱 '분노' 타이밍이었다. 아니, 분노에서 허탈함, 약간의 포기 상태로 넘어갔다고 해야 할까. 제발 조용히 놀라고, 조금이라도 쿵쿵거리지 말라고 소리 지르다 지쳐 이젠 거의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 어 왔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막 들어온 사람한테 짜증 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려 노력하는 건 은서의 오랜 습관이었다. 퇴근해서 들어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안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지 않겠지. 그녀는 그랬다. 남편과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도 늘 마지막엔 화해를 주도하는 편이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론 함께 싸운 거니, 무언가를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어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상대도 그래주길 바랐다.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완벽한 화해 장면이 둘 사이에도 있길 바랐다. 그녀가 먼저 미안해, 앞으론 조심할게. 라고 말하면 남편도 -마지못해서라도- 그래 나도 미안해, 나도 말이 좀 심했어. 따위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 100퍼센트 진심은 못 될지언정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열기가 식고 사이가 조금은 사근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거의 10년을 살았다. 하지만 지혁 역시 본인만의 믿음과 소신이 강했다. 나가선 억지 사과도 얼마든지 할 줄 아는 그였지만 집에서까지 그럴 순 없었다. 심지 굳은 둘은 그렇게 10년을 버텼다.

예민하기로 소문난 아랫집의 민원이 시작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시작된 컴플레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이전 아파트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늘 조심했으나 때론 아침부터, 또는 벌건 대낮에도 '소음을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알고 보니 이들이 이사오기 전부터도 이래 저래 민감한 세대로 경비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집이었다.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다 보니 새 집을 계약할 때마다 습관처럼 층간소음 문제가 없는지부터 늘 체크하는 은서인데, 그때도 집주인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자신은 아랫집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고.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직접 만나는 것보단 주로 전화나 문자로 소통했던 모양이었다. 본인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동안에도 엄청난 불만과 민원을 불사했었다고, 대화 중 자기도 모르게 실토해 버리고 말았다. 어쩐지 이렇게 집을 잘해놓고 멀리 이사 가는 게 찝찝했었다. 아파트 주차 문제라고 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주차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인근 아파트 단지들에 비하면 오히려 쾌적한 편이었다. 거의 서른까지 부모님 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란 은서지만, 결혼 이후 이렇게 크고 작은 일들을 겪어가며 조금씩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미리부터 세상에 대한 맷집을 좀 키워서 올걸 하는 생각도 종종 하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과 살 때 그나마 편안하게 산 것에 대해 감사했다. 이 때문에 지혁에게 종종 철없는 아내 취급을 받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은서의 전투력을 짧은 시간에 올려준 상대가 바로 아랫집이었다.

스트레스. 어느 정도면 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은서는 하루에도 50번 정도는 아랫집을 생각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생각이 났고 아이들과 있을 때는 거의 연속적으로 계속 생각을 했다. 심하게 곤두섰고, 쓸데없이 민감했다. 아이들과 공부하다가 연필만 굴러 떨어져도 빽, 소리를 질렀다. 질러대는 목소리가 클지 연필 떨어지는 소리가 클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반사적으로 고함을 쳤다. 키즈 전용 아파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학교가 즐비한 이런 학군지에 살려면 암묵적으로 아이들 소리는 인정해 주는 세상이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게다가 아랫집 가정 구성원이 어린아이라곤 없는 2-30대 미혼 자녀와 부모로 구성되었으니 아이들 소리를 더 싫어하는 거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아이 낳기를 다들 꺼려하지. 은서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빨랐고, 어려서 그런가 적응력도 남달랐다. 구름 위를 거니는 것처럼 걸으라는 엄마의 호통에 아이들은 어느새 사뿐히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건을 잘 떨어뜨리는 등의 어린아이 특유의 실수는 어쩔 수 없었지만. 확실히 아이들의 부산한 발걸음은 커가며 점점 조용해져 갔고, 몇 번의 부딪힘 끝에 아랫집도 이젠 좀 잠잠했다. 한번 온 가족이 초저녁 식사 후에 호떡을 구워 먹으며 부엌에서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걷기만 했다. 절대 뛰지 않았다- 하하 호호 웃었던 날, 오랜만에 아랫집 여자가 담배 피우러 나가는 지혁을 따라 내려가 지금 뭐 하고 계시길래 이리 시끄럽냐고 묻긴 했었지만 말이다. 아마도 절간처럼 고요히 집에 있다가 대문 여는 소리를 듣고 따라 나온 것 같았다. 이사 초반 사과를 할 만큼 한 그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다 자란 성인 자녀가 24시간 상주하며 공부하는 집이니, 웃고 떠드는 윗집이 시끄러울 수는 있겠다 싶었다.

물론 윗집의 소음으로 고생하는 아랫집들이 대한민국에는 참 많다. 아랫집이 예민해서만이 아니다. 개념 없는 윗집도 많고, 참고 사는 아랫집도 많다. 그걸 모르는 은서네가 아니었다. 예전 아파트에선 윗집의 소음에도 시달려 봤고, 참아도 봤고 한번쯤은 인터폰을 걸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아랫집은 소음 외에도 아파트를 상대로 거는 온갖 민원이 워낙 많은 집이라, 은서네의 억울함을 모르는 집이 없었다. 답은 하나였다. 다가오는 전세 만기에 이사를 가는 것. 아들 둘이 뭐 죄라고 굳이 1층을 찾아가나 그동안 당당했던 마음은 온대 간대 없었다. 가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너희도 산다. 은서는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공상도 많이 하고 문제집엔 공부한 흔적보다 낙서한 흔적이 많던 은서는, 결혼 이후의 생활이 너무 단조로웠다. 처음엔 그냥 주부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결혼 전 회사를 다닐 때 점심시간에 목격한 젊은 주부들의 삶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온갖 의무와 책임에 시달리는 어른의 생활,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버겁기도 했고 누구나 온다는 3년 차, 5년 차 직장 권태기에 한창 허우적 댈 때였다. 우아하게 유모차를 밀고 카페에서 몇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이 한없이 한가해 보였다. 물론 그게 엄청난 착각이었던 건 나중에 뼈저리게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연애도 몇 번 해봤지만 결혼까지 가진 않았고 적당히 만나다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러다 우연한 소개팅 기회가 생겼고 지혁을 만났다. 친구에게 들어온 소개팅이었지만 썸남이 있던 친구는 마음이 없었고, 그렇게 은서의 인연이 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잘못된 만남일 수 있고, 또 어찌 보면 오히려 운명일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눈에 마음에 든 둘은 그것을 엄청난 운명이라 여기고 서로에게 포옥 빠져들었다. 모든 것에 의미 부여가 되었고, 5살이라는 나이 차이도, 취미가 전혀 다른 것도 아무 상관없었다. 맞지 않는 것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말하기를 꺼렸던 것 같았다. 공통점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았다. 마치 인터넷 쇼핑 중 꽂힌 물건이 있을 때 좋은 후기만 찾아 읽는 것과도 비슷했다. 나쁜 후기를 보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저 사고픈 마음에 내가 보고 싶은 면만 보는 것. 둘의 유일한 공통점은 쇼핑습관이었다. 그게 결혼을 할 때 비슷하게 작용했고, 뭔가에 씌인 듯 좋은 점만 바라보며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요즘 은서는 쇼핑을 할 때마다 소개팅과 결혼까지의 그 짧았던 기간이 자꾸 오버랩되는 걸 느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그토록 원하던 전업주부로 시작한 신혼 생활은 생각보다 적적했고,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주부란 직업을 너무 쉽게 봤다.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난다는 이놈의 살림은 웬만한 직업의식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다. 집안에 경쟁자도 없었고, 인정해 주는 동료도 없었다. 물론 집 밖으로 눈을 돌리면 경쟁자로 삼을 사람이 모든 집마다 한 사람씩은 보통 존재하지만, 아이가 있기 전의 새댁에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삭막한 세상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인정'이라는 것을 해줄 사람은 남편인 지혁이었는데, 그 역시 초보 남편이었기에 그런 걸 알리 만무했다. 자신 역시 힘들게 회사에서 일하고 오니, 집에 있는 은서 팔자가 너무 좋아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살림 경험이 전무한 은서에게서 나오는 음식은 지혁 기준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주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뿐이었다. 그런 지혁의 표정과 말투 하나에도 은서는 민감하게 반응했고, 하나뿐인 동료이자 상사 같은 파트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주부라는 직업이 점점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몇 달 만에 아이가 생겼고, 지루하고 어렵던 '아이 없는 전업 주부'의 삶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어도 뭔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임산부' 시기를 거쳐 '아기 엄마'가 되었다. 정신없이 연년생 두 아이를 내리 낳아 키우고 아들 엄마로서의 전투력도 차근히 쌓아갔다. 더 이상 예전의 순수한 은서가 아니었다. 언니와 단둘이 자라왔기에 욕은커녕 조용조용 나름 조신하게 살아왔다 생각해 왔는데, 마음속에 그런 악독한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 사춘기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모여 학생주임을 욕하던 때보다 더했다. 쌍욕만 아니었지, 지혁 없이 독박육아를 하던 어느 날 밤 해맑게 웃으며 동생 재우는 걸 방해하던 큰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고함 육아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고함 소리는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었다. 동안인 편이라 아직도 혼자 나가면 애 엄마인 게 맞냐, 미혼인 줄 알았다는 등의 소리를 꽤 듣는 은서에겐 나름의 이중생활이라 봐도 만무했다. 


잠시 옛 생각에 빠져있던 은서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너무 오래 상념에 젖어 있었다. 할 일이 태산이고, 일어나야 했다. 저녁시간은 주부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자 동시에 가장 바쁜 때이기도 했다. 아이는 벌써 숨바꼭질을 끝냈는지 보이지 않았고 퇴근해 돌아온 지혁은, 지혁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잠깐, 너무 조용해. 이상한데? 은서 자신은 방금 걸터앉은 소파 끝에 아직 그대로 있는데 다른 것은 왠지 모두 달라진 기분이었다. 우리 집 시계가 원래 저거였던가, 아닌 것 같은데. 벽지 톤 역시 미세하게 달라 보였고, 티비는 더 커졌고 앉아있는 소파는 더 푹신해졌다. 마치 아파트 같은 라인 다른 집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