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교사는 살아남을 수 없는 학교

by 미냉

수업 중 A교사는 한 학생에게 휴대폰을 치우라고 조용히 말했다. 학생은 불만을 내비쳤지만 수업은 별탈 없이 끝났다. 문제는 그날 오후, 학부모의 항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됐다.

“왜 우리 아이만 지적하셨죠? 기분이 상했다네요.”

민원은 곧 교감에게 전달됐고 교사는 학부모에게 사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정당한 지도였지만 A교사는 교감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강하게 나서지 못했다. 결국 “오해였다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물러섰다.

정당하게 행동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한 셈이었다.


교사다움이라는 굴레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다. 많은 교사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그 반복의 이면에는 한 가지 공통된 감정이 있다.

“나는 교사니까 참아야 한다.”

교사는 언제나 자상하고, 도덕적이며,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기준. 그 기준은 외부의 요구이자, 교사 스스로가 만들어낸 내면의 굴레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려 하며, 싸우기보단 이해시키려 한다.

이런 태도는 분명 교육자로서의 미덕이지만 오늘날의 교실에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학생은 교사의 한계를 시험하고, 학부모는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며, 학교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 교사를 선호한다. 그 결과 교사의 선의는 더 이상 교실을 지키지 못한다.


얌전한 분노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2023년 서이초 교사의 비극 이후, 교사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그 시위조차 질서정연했다. 줄을 맞춰 앉고, 학교에 지장이 없도록 연가를 내며 참여했고, 끝나고는 스스로 쓰레기를 치웠다. 경찰은 “모범적인 시위”라고 칭찬했고, 언론은 “품격 있는 집회”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분노해야 할 순간에도 이렇게 조용해야만 할까?
이토록 절제된 표현이 과연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사회에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까?

교사들의 성숙한 행동은 분명 소중한 미덕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현실 속에서, 그 미덕이 교사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선한 태도’만으로는 교실을 지킬 수 없다

교사의 인내가 길어질수록, 수업을 방해하는 소수에게 유리한 교실이 만들어진다.

그 피해는 조용히 배우려는 다수 학생에게 돌아간다.
과도한 민원 앞에 주저하는 교사는 정작 필요한 순간에 학생 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

교사가 물러설수록, 교실은 무너진다.
선의는 교실을 지탱하는 토대일 수는 있지만, 지키는 방패가 되기엔 부족하다.


교사는 위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무섭거나 잔인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 교사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게 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수업 방해는 생활기록부에 반영되어야 하고, 부당한 민원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학교가 교사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을 경우, 교육청이나 교원단체에 정식으로 절차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이제 교사는 제도를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 대응은 감정이 아닌 원칙과 기록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런 신호가 주어져야

악의적 행동은 억제되고, 교사는 존중을 회복하며, 무너진 교실은 다시 중심을 잡는다.


교사에게 선의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선의가 의미를 가지려면, 단호함과 경계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도 교사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착한 교사, 자상한 교사, 인내하는 교사.
그 모든 모습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한 가지.

필요할 때는 맞설 줄 아는, 선한 전략가로서의 교사.

그래야 교사는 살아남고,
교실도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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