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이라는 우리 삶의 기본값에 대해

by 미냉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시 두 편을 통해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유치환의 시 「깃발」과 서정주의 「추천사」입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 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두 시에서 공통점이 느껴지시나요? 그것은 어딘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방향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 흔들리고,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는 이 움직임은 어떤 모습을 나타낼까요? 무의미한 반복일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향하려는 태도일까요?


우리는 종종 100%라는 지점을 설정합니다. 시험처럼 점수가 명확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에서는 그런 기준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기획서가 무엇인지, 완벽한 수업이 어떤 것인지, 완벽한 글이란 어떤 수준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머릿속에 그런 상태를 상정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보면서 “이건 뭔가 완벽하지 않아”라고 깎아내리게 됩니다. 글을 다 쓰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수업을 마치고도 아쉬움이 남고, 무언가를 완성하고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런 태도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설령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괜찮은 결과를 만들었어도 스스로 설정한 100%에 닿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때 완전성이라는 개념은 목표라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부정하기 위한 근거에 가까워집니다. “완벽하지 않으니까”라는 말로, 여기까지 온 시간과 노력을 무효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불만족이 때로 결과물을 더 멀리 밀어 올리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 감정에 매몰되어 아예 움직이기를 멈추거나, 이미 도달한 지점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불완전함은 뭔가를 더 채워넣어야하는 불충분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삶이 놓여 있는 기본값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완전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개념 속에만 있을 뿐 현실에서는 한 번도 완전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완전해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바뀌고, 조건은 달라집니다. 한때는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도 나중에는 그렇지 못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 순간의 조건 속에서 가능한 방식이었을 뿐입니다. 나무를 떠올려 보세요. 바람이 센 곳의 나무는 한쪽으로 기울고, 그늘진 곳의 나무는 빛을 향해 비틀어집니다. 우리는 그 모양을 결함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 나무가 그 자리에서 살아온 흔적이라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불완전한 결과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항상 발전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부족함은 그대로 남고, 어떤 시행착오는 아무 교훈도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완전함은 우리가 출발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냥 불완전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저도 비슷한 경험이 많습니다. 어떤 글을 쓰고 나면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죠.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하여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기한이 있는 동안은 이 불완전한 상태를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손을 댑니다. 시간이 남아있으니 고치다 보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쉬지 않고 읽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결국 기한이 오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로 끝을 냅니다. 완전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전을 향해 간 것이 아니라 기한이 올 때까지 불완전함 속에서 헤맨 것뿐입니다.

그렇게 마무리한 글을 나중에 다시 보면, 차라리 처음 쓴 버전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것도 뭔가 부족했지만, 여러 번 고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완전을 향해 간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불완전함으로 바꾼 것뿐이었습니다. 마지막엔 "이제 됐어"라고 말하지만, 글이 완전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글의 수준이 더 올라갔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기한 내내 쉬지 않고 고쳐 썼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더 이상 손댈 시간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땠을까요?


다시 시로 돌아가면, 깃발은 바다에 닿지 못합니다. 그네도 달에 닿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다가 저기 있고, 달이 저기 있기에 깃발은 흔들리고 그네는 올라갑니다.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는 않습니다.

완전성은 도달해야 할 종착점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기준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평가하기 위한 잣대라기보다,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 두는 표식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끝내 완전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늘 쓴 글도, 오늘 한 수업도, 오늘 살아낸 하루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불완전한 상태로 흔들리고,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는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다에 닿지 못하는 깃발처럼, 달에 닿지 못하는 그네처럼.

어쩌면 그 멈추지 않는 움직임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