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보셨나요? 국보법 위반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차동영(곽도원 분)이 대답합니다.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판단합니다."
'국가'가 판단한다는 말이 조금 묘하게 들립니다. 영화 <실미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684부대장인 최 준위(안성기 분)가 부대 해체가 누구의 명령인지 묻자 답이 돌아옵니다. "국가의 명령입니다." 그러자 최준위는 반문합니다. "중앙정보부가 국가입니까?" 국가라는 것이 판단이나 명령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비단 영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일상에도 이와 비슷한 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회사가 나를 내보냈다", "학교에서 정학 처분을 내렸다". 등등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문장들입니다. 조직이 마치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인 것처럼 말해지는 순간이지요.
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2학기가 되면서 어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그 자리를 누가 맡을지로 말이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서도 아니고 당시에 맡고 있던 업무도 꽤 중요했기 때문에 남일처럼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저를 불렀습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교감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자리를 맡아줘야겠어요." 저는 담당업무가 갑자기 바뀌는 것은 둘째치고 해당 부서에 그 자리를 채울 다른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조심스럽게 거절의사를 밝혔죠. 하지만 교감 선생님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이 다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자리로 가주지 않으면 학교 입장이 참 곤란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곤란해지는 것일까요? 그리고 저도 학교 구성원이지 않은가요. 그런데 나는 이 "학교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입장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관리자들이 결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여러 사람이 모여 논의한 결과일까요. 교감 본인의 판단은 아닐까요.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학교"라는 이름 뒤로 누군가가, 혹은 누군가들이 숨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구조적인 것입니다. 사실 한국의 많은 조직에서 최종 결정권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집단적 논의를 거치는 조직도 있지만, 수직적 구조에서 "조직의 입장"은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의 입장과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교장의 생각이 곧 학교의 입장이 되고, 사장의 판단이 회사의 방침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직접적으로 말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결정하셨습니다"가 아니라 "학교에서 이렇게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해집니다. 최고 결정권자가 직접 나서지 않고, 중간 관리자들이 "학교 입장", "회사 방침"이라는 말과 함께 결정을 전달합니다.
이렇게 되면 의사결정 과정이 완전히 불투명해집니다. "학교에서 결정했다"는 말이 교장의 단독 결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교무회의를 거쳐 나온 결과인지, 정말 모든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서 나온 것인지 듣는 쪽에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조직의 이름은 의사결정 과정 전체를 가려버립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논의를 거쳐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학교에서"라는 네 글자 뒤로 사라집니다.
두 번째 문제는 권위의 증폭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결정했습니다"와 "학교가 결정했습니다"는 듣는 사람에게 주는 무게감이 전혀 다릅니다. 한 사람의 판단은 조직 전체의 뜻으로 포장되면서 훨씬 더 거대하고 불가항력적인 것이 됩니다. 개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조직 전체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교장 선생님, 그건 좀 부당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학교의 결정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후자는 마치 조직 전체에 맞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 번째 문제는 책임의 희석입니다. 나중에 그 결정이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조직 차원의 결정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워집니다. 학교가, 회사가 결정한 것이지, 특정한 누군가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결정권자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고, 전달자는 단지 메신저일 뿐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책임질 사람이 구조 속에서 사라집니다. 피해자는 누구에게 항의해야 하는지조차 모호한 상황 속에 남겨지게 됩니다.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라는 표현이 이토록 자연스러운 사회는 의사결정이 불투명하고 책임 소재가 모호한 사회입니다. 조직의 이름 뒤로 권력자가 숨고, 그 권력은 조직의 권위를 빌려 더 크게 작동합니다. 우리가 이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동안, 이 구조는 아무 저항 없이 계속 유지됩니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학교에서", "회사에서"라고 말할 때, 잠시 멈춰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직의 이름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 그 얼굴을 보려는 시도만으로도, 이 구조는 조금씩 흔들릴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