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위기: 독자가 사라진 곳에 글쓰기만 남는다면

by 미냉

브런치는 원래 승인된 작가들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으로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일반적인 블로그와 달리, 일정 수준 이상의 글쓰기 능력을 갖춘 창작자들의 공간이라는 점이 초기 브런치의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였죠. 덕분에 독자들은 브런치에 접속하면 적어도 '읽을 만한' 글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필터링이 예전만큼 견고한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AI의 등장은 글쓰기의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죠. AI가 쓴 글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생산량의 폭증입니다. 하루에 쏟아지는 글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브런치의 큐레이션 시스템이 이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고 있는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찾기 어려워진 좋은 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브런치에 좋은 글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상위권에 오르는 글이나 출간으로 이어지는 콘텐츠를 보면 여전히 수준 높은 다이아몬드들이 빛을 발하고 있죠. 문제는 그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이 점점 더 험난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엄선된 책 100권이 놓인 작은 서점 같았다면, 지금은 거대한 창고에 수만 권의 책이 쌓여 있는 격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진흙 속을 헤매야 한다면, 독자들은 지치기 마련입니다. '좋은 글을 찾는 비용'이 '그 글에서 얻는 가치'보다 커지는 순간, 독자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플랫폼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현재 브런치가 마주한 '신호와 노이즈'의 문제입니다.


작가들만 남은 플랫폼, 그 안의 메아리

독자가 떠난 자리에 남는 건 결국 글을 쓰는 사람들, 혹은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입니다. 브런치에서 출간 관련 콘텐츠가 유독 인기를 끄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많은 이들이 '읽기 위해' 오기보다 '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와 필자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렇게 되면 플랫폼의 성격도 변하게 됩니다. '읽는 이들을 위한 서재'가 아니라 '쓰는 이들의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죠. 이때부터는 콘텐츠의 질보다 '네트워킹'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서로 라이킷을 주고받고 댓글을 달며 가시성을 높이는 전략은 효과적이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독자를 위해 쓰고 있나요, 아니면 알고리즘에 노출되기 위해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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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화된 글쓰기의 함정

만약 플랫폼의 구조가 '양'에 반응한다면, 작가가 다작으로 승부하는 건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릅니다. 매일 글을 올리는 사람이 일주일에 한 편 공들여 쓰는 사람보다 노출 기회를 훨씬 더 많이 얻는 구조니까요.

여기에 묵시적인 라이킷 품앗이가 더해지면 단기적인 수치는 화려해집니다. AI의 도움으로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구성도 나쁘지 않은 글들이 양산되지만, 그 안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숨결이나 날카로운 통찰을 발견하기란 점점 어려워집니다. 읽을 만하지만 금세 잊히는 글들 사이에서 진짜 가치 있는 글들이 묻히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누구의 책임인가

시스템의 정체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독자들은 그저 좋은 글을 원할 뿐이며, 찾기 어려워지면 자연스레 발길을 돌릴 뿐입니다. 문제는 플랫폼이 변화한 환경(AI의 등장과 콘텐츠 폭증)에 맞는 새로운 필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 작가들이 어느덧 시스템의 빈틈을 공략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점에 있습니다.

브런치의 큐레이션은 여전히 과거의 문법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 승인 이후의 질적 관리를 알고리즘에만 의존하면서, 늘어난 노이즈를 걸러낼 정교한 대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 창작자들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AI를 도구로 쓰는 것을 넘어 AI의 문장에 내 목소리를 의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미 있는 한 편'보다 '노출을 위한 열 편'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결국 시스템이 유도하는 방향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창작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보이지 않는 임계점

솔직히 말해, 플랫폼이 단기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플랫폼의 지표상으로는 매일 수천 편의 글이 발행되고, 라이킷이 오가는 모습이 '활발한 커뮤니티'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들 또한 당장의 가시성을 확보해주는 현재의 게임 법칙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임계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진짜 독자'는 조용히 작별을 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창작자들만 남아서 서로의 글을 품앗이하듯 읽어주는 공간에 미래가 있을까요? 독자가 사라진 플랫폼은 결국 그들만의 섬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섬의 입구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플랫폼의 변화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 안의 '개인'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이제 단순한 인기순, 최신순을 넘어 퀄리티와 취향을 반영한 큐레이션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에디터의 심미안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게임화된 보상 체계가 글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게 할 장치는 무엇인지 대답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작가들도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정말 내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의 입맛에 맞는 문장을 복제하고 있는가?"

이것은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제언입니다. 독자가 없는 플랫폼에서 받은 천 개의 라이킷보다, 단 한 명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이 창작자를 오래 살게 합니다.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소중한 기록의 터전을 잃게 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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