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관계는 깊어진다

―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한 교사의 작은 관찰

by 미냉

나는 대구에서 자랐다.
그리고 지금은 강원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입에 익은 사투리는 금세 들통났다.
“선생님, 대구에서 오셨어요?”
익숙한 사투리였던 모양이다. 웃으며 그렇다고 답하자,
어느 학생이 대구에 있는 누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잠깐 멍했다.
나는 대구에 고등학교가 몇 개인지도 모르는데,
같은 또래 이름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알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그래서 물었다. “혹시 너희들은, 학교가 달라도 이름만 들으면 서로 알 수 있어?”
학생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알 수도 있죠.”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아도 이웃의 이름을 모른 채 살아왔던 것 같다.
관계가 늘 낯설고, 언제든 스쳐 지나가는 것쯤으로 여겨지는 곳.
그게 도시의 기본값이었다.

반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다르다.
학생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친구의 친구까지도 대강 파악하고 있다.
‘누구 알아요?’라는 질문이 낯설지 않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려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이름 하나가 사람을 잇고, 동네 하나가 연결망이 된다.

그건 교사인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전 일이다.
시내 중심가에 나가면, 꽤 자주 학생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선생님, 여자친구분이랑 어제 영화 보러 가셨죠?”

나는 화들짝 놀랐다.
누가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것을 인식하게 되자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말투, 표정, 행동,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상의 무게.
익명성이 사라진 공간에선, 사람이 조심스럽게 존재하게 된다.

누구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는 ‘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누군가가 있는 공간에서는, ‘나와 너’가 함께 존재하게 된다.
그게 도시와 지역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익명성은 때로 편안하다.
하지만 그 익명성 속에서는, 나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무언가가 사라진다.
관계가 줄어들수록 예의는 퇴색되고,
공간이 커질수록 책임은 흐려진다.

작은 지역에서 자란 학생들은 조금 다르다.
대체로 인사를 잘하고, 말투가 부드럽고, 눈을 마주친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분위기 안에서 자란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건 배운 예절이 아니라, 몸에 밴 질서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이제는 지역보다도 더 강력한 ‘비대면의 공간’이 있다는 것.
학생들이 머무는 온라인 공간 말이다.
그곳에서는 이름도, 표정도, 물리적 거리도 필요 없다.
지우고 싶으면 차단하고, 말 걸고 싶지 않으면 꺼버리면 된다.

어쩌면 온라인 공간은 도시보다 더 도시적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구와도 책임 있는 관계를 맺지 않는 구조.
그 안에서 아이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조심할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지역에서 자라고 있어도,
마음은 이미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 공간’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걱정하는 일이다.

삶이 교육이라면, 공간도 교육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공간,
말하지 않아도 조심스러워지는 환경.
그런 곳에서 자란 아이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인사를 한다.
그건 착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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