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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18. 2023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중학교 때 헤르만헤세의 소설을 읽다가 접고, 읽다가 자고......

늘 책상 위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끝을 보지 못했던, 그렇게 유년 시절 내가 접한 독일소설에 대한 첫인상은 누리끼리한 바탕에 검은 글자가 전부였을 뿐,  어떤 감흥도, 흥미도 없는 책이었.

지극히 철학적인 것도 부족해 다루는 내용은 죄다 인간심리, 내면과 같은 심오함 뿐이라 읽을 때마다 숨이 막혔고 내가 통과해야 할 고난 숙제 같았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 어려운 소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판독하는 능력은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한 문장을 여러 번 왕복해야 할 때가 많다는 것, 한 단어에 시선이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독일소설가들의 이름들 중에 '하인리히 '을 접하게 된 건 노벨문학상이란 타이틀 때문이었다. 그래서 염두에 두었던 걸까, '천사의 침묵'을 읽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손에 들게 되었다.

하필 이 책을 읽을 당시 우리나라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 윤성여 씨의 이야기이다. 낮에는 책을 읽고, 저녁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두 이야기가 혼돈이 될 정도로 대입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기사를 읽는 느낌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 책에서 다룬 언론에 눈이 멀어 바짝 독이 오른 일간지 기자가 카타리나를 낭떠러지까지 몰고 간 모습과 허위로 뒤범벅이 되고 온통 거짓으로 조작된 증거들, 억측으로 일관해 결국 무고한 시민인 윤성여 씨를 범인으로 몰고 간 사건.

가정 관리사에 불과한 평범한 카타리나를 언론과 정치적 세력에 의해 살인자의 정부로 둔갑시키고 망가뜨리고 짓밟은 일, 나약하고 평범한 윤성여 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20년.

불우하게 자란 카타리나는 이혼 등의 치부까지 악용되었 윤성여 씨 역시 어려웠던 환경과 소아마비라는 나약함이 이용되었다.

결국 엄마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성희롱까지 당해야 했지만 그녀에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듯 책밖에 현실에서 윤성여 씨 또한 온 가족이 망가지고 모든 것을 다 뒤집어쓰고도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정당화될 수 없는 카타리나의 살인 앞에서도 비난할 수 없는 마음이 드는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아니, 너무나 통쾌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책을 읽는 내내 두통에 시달려야 했고 한숨은 습관인양 여러 번 터져 나왔다.

언론의 폭력이 미치는 영향, 모든 것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비통해야만 했다.

'차이퉁은 그들 자신들의 범죄행위만 좋아하고, 맘에 들지 않거나 분명하지 않은 사실은 모조리 조작한다.'

'검찰은 현장검증에서 소아마비로 담을 넘을 수 없는 성여씨에게 담을 넘는 시늉만 하게 시키고 이를 증거로 사용했다.'

한 치의 다른 점도 찾을 수 없는 책 속과 책밖에 이야기에 분개하며 이야기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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