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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23. 2023

어느덧 50

"우리 환이 어제 군대 갔어."

"뭐라고? 걔가 벌써?"

환이는 우리 딸과 같은 학교에 다녔었고 환이엄마와 나는 동선이 자주 겹쳐 눈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으나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있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년생이세요? 나보다 언니신가, "

"저 74요."

"어머, 나도 74."

같은 나이라는 사실이 둘 사이의 벽을 여러 장 허물었고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우리 이제 말 놓자. 나이도 같은데."

"그래, 나도 그게 편해."

그렇게 깊숙한 얘기까지 터놓으며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집이 이사를 하면서 서로의 일상에 치어 한동안 연락도 못하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던 건데 뜻밖의 소식에 꽤 오랜 시간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내내 코끝과 가슴과 눈자위까지 번갈아가며 시큰거려 왔고 거센 바람에 들이치는 빗물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환이내 딸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오빠이다.

아니, 생년월일로 따지면 동갑이나 다름없다.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던 그 애가 벌써 군대를 갔다는 게 믿기질 않아 잠시 멈칫하며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젖살이 그대로 붙어있는 토실하고 뽀얀 얼굴이 곱상하고 귀여워서 여자친구들한테 인기 꽤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해맑게 웃는 모습에 장난이 잔뜩 달려있던 어린애 같던 것이 군인이 되었다는 게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어느덧 꼬맹이들은 자라서 군인아저씨가 되었고 우리는 자식들 군대 보낼 나이가 되었구나.


초등학교 때 합창부였던 내가 군대 위문공연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군인아저씨들은 하나같이 몸피크고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많은 씩씩한 용사였는데......

남자친구 입대할 때 훈련소에 따라가서 눈물 콧물 다 빼던 그때 내 눈에 비친 군인들은 모두 누군가의 애인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는데......

치킨을 사들고 남동생 군대 면회 갔던 날에 봤던 군인들은 모두 풋풋한 동생들이었는데......  이젠 그 모든 걸 훌쩍 뛰어넘어 자식뻘이라니.


세월이란 놈은 실체도 목소리도 없어서 야속하기만 하다. 저 지나갑니다.라고 얘기나 좀 하고 갈 것이지.


"내가 왜 이렇게 찡하지?"

"자기가 왜?"

"몰라. 괜히 뭉클하네."

"갑자기 할 일이 왕창 없어진 느낌이야. 가서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에구. 무슨 그런 걱정을 해. 환이는 야무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서 잘 지낼 거야. 아무 걱정 말아."

위로의 말로 잘할 거야, 걱정 마,

라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하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눈앞에 환이의 군복 입은 모습이 여러 명 만들어졌다.

어리고 천진난만한 얼굴에 군복이 겉돌았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환이엄마의 그늘진 얼굴을 상상했다. 랑 수다 떨 때의 모습은 그냥 동갑내기 친구일 뿐인데.


우리는 느껴지지도 않는 세월 속에서 정신없이 살았을 뿐인데 어느덧 그녀도, 나도, 군인이 되고 숙녀가 된 아이들의 지긋한 엄마가 되어있다. 그렇게 우리도 어느덧 50이 되어있다. 50은 우리 엄마나이 아니었던가. 유난히 허탈해지는 오늘 같은 날엔 글 속에는 절대 넣지 않는 딱 한 단어, 신조어가 떠오른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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