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이는우리 딸과 같은 학교에다녔었고 환이엄마와 나는 동선이 자주 겹쳐 눈인사정도 나누는 사이였으나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있는그녀가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년생이세요? 나보다 언니신가, "
"저 74요."
"어머, 나도 74."
같은 나이라는 사실이 둘 사이의 벽을 여러 장 허물었고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우리 이제 말 놓자. 나이도 같은데."
"그래, 나도 그게 편해."
그렇게 깊숙한 얘기까지 터놓으며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집이 이사를 하면서 서로의 일상에 치어 한동안 연락도못하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안부를물었던 건데뜻밖의 소식에꽤 오랜 시간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내내코끝과 가슴과 눈자위까지번갈아가며시큰거려 왔고 거센 바람에 들이치는 빗물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환이는 내 딸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오빠이다.
아니, 생년월일로 따지면 동갑이나 다름없다.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던 그 애가 벌써 군대를 갔다는 게믿기질 않아 잠시 멈칫하며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젖살이 그대로 붙어있는 토실하고 뽀얀얼굴이곱상하고 귀여워서여자친구들한테 인기 꽤나 있겠다고생각했었는데, 해맑게 웃는 모습에 장난이 잔뜩 달려있던 어린애 같던고것이군인이 되었다는 게생경스럽게 느껴졌다.
어느덧 꼬맹이들은자라서군인아저씨가 되었고 우리는 자식들 군대 보낼 나이가 되었구나.
초등학교 때 합창부였던내가 군대위문공연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던군인아저씨들은하나같이몸피가 크고가늠할 수 없을 만큼나이가많은 씩씩한 용사였는데......
남자친구 입대할 때 훈련소에 따라가서 눈물 콧물 다 빼던 그때내 눈에 비친 군인들은모두 누군가의 애인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는데......
치킨을 사들고 남동생군대면회 갔던 날에봤던 군인들은 모두 풋풋한동생들이었는데...... 이젠 그 모든 걸 훌쩍 뛰어넘어 자식뻘이라니.
세월이란 놈은 실체도목소리도없어서더 야속하기만 하다. 저 지나갑니다.라고 얘기나 좀 하고 갈 것이지.
"내가 왜 이렇게 찡하지?"
"자기가 왜?"
"몰라. 괜히 뭉클하네."
"갑자기 할 일이 왕창 없어진 느낌이야. 가서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에구. 무슨 그런 걱정을 해. 환이는 야무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서 잘 지낼 거야. 아무 걱정 말아."
위로의 말로 잘할 거야, 걱정 마,
라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하다가전화를 끊었는데 눈앞에환이의 군복 입은 모습이 여러 명 만들어졌다.
어리고천진난만한 얼굴에 군복이겉돌았다.아들을 군대에 보낸 환이엄마의 그늘진 얼굴을 상상했다.나랑 수다 떨 때의 모습은 그냥 동갑내기 친구일 뿐인데.
우리는 느껴지지도 않는 세월 속에서 정신없이 살았을 뿐인데 어느덧 그녀도, 나도, 군인이 되고 숙녀가 된 아이들의 지긋한 엄마가 되어있다.그렇게 우리도 어느덧 50이 되어있다. 50은 우리 엄마나이 아니었던가. 유난히 허탈해지는 오늘 같은 날엔 글 속에는 절대 넣지 않는 딱 한 단어, 신조어가 떠오른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