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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14. 2023

내 생에 첫 콘서트

코끝을 스치는 차고 흐릿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무슨 냄새지?'

그 순간 무대에 가득해진 안개,

'아! 저 안개에서......'

어두운 조명 아래 어스름 속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남자의 뒷모습,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긴 코트를 걸치고 고개를 반쯤 숙인 실루엣을 보는 순간 목구멍에서 반사적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악......

그가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흘러나오는 전주소리는 공간을 터뜨려버릴 것 같이 크고 웅장했다.




옆반 희진이는 또래 고2 여학생들에 비해 성숙했고 특이하다는 소문이 무성한 비범한 친구였다. 한 다리 건너 알게 된 그 친구가 어느 날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오늘 학교 끝나고 콘서트 안 갈래?"

"누구 콘서트야? 신승훈?"

"아니."

"그럼 이승환? 윤상?"

"아닌데......"

"그럼 누군데?"

"학기오빠."

"학기오빠?"

"그래, 박학기."

모두가 승훈, 이승환에 열광할 때 박학기를 좋아한다는 희진이를 보며 역시 보통의 여고생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자, 나 시간 괜찮아."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콘서트였다.


언제라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그 숨결에 내 가슴은 멈출 것 같아

그대에게 다시 전할 수 있다면

감출 수 없는 내 가슴은 말하고파

자꾸 서성이게 돼

한 번쯤 하는 생각에

나도 몰래 숨길 수 없는 이 생각에 오

자꾸 서성이게 돼


흔들릴 듯 부서질 듯 가냘픈 목소리였지만 강한 발성이 고음에서도 깨지지 않고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조곤조곤 불러주는 그의 노랫소리는  한곡도  흘러가는 법 없이 한곡 한곡 가슴에 들어와 맺히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가버릴까 봐 아까워서 조마조마하고 있을 때쯤 게스트로 나온 한 남자가수의 목소리는 한 번의 충격이었다. 짙은 청색 데님바지에 재킷까지 한벌로 입고 키보드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랫소리는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처럼 맑았다.

"희진아, 사람이 목소리가 어쩌면 저럴 수 있지?"

"...... 영석오빠 원래 노래 잘하잖아."

희진이는 유영석이란 이름에 성을 떼고 오빠라는 호칭을 붙여 부르는 데에 거침이 없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옆집오빠를 부르고 있는 듯. 나는 황홀경에 취한 채 혼자 되뇌어 보았다. 영석오빠......


고2 때 난생처음 갔던 콘서트의 여운은 오래 머물렀다.

"너 나중에 학기오빠 콘서트 또 가고 싶으면 얘기해. 내가 학기오빠 팬클럽이거든."

"진짜? 근데  콘서트 몇 번이나 가봤어?"

"글쎄, ...... 열 번은 되지 않겠어?"

콧등으로 살짝 내려온 안경을 올리기 위해 미간을 찡긋거리는 그녀의 얼굴이 그날따라 한층 더 성숙해 보였다.

"나 한번 더 가고 싶어. 나중에 꼭 데려가 줘야 해."


1990년 박학기 콘서트를 관람하던 나는 어리고 순수했다. 가수의 목소리는 가슴과 귀에 그대로 꽂혀 심장을 슴벅거리게 했고 무대를 감싸는 현란한 조명에 눈동자는 길을 잃은 듯 사방으로 움직였다. 쩌렁쩌렁한 사운드는 나를 소리치게 했고 설레게 했다. 그날의 영상은 진한 색으로 머리에, 가슴에 찍혔버렸다.


그 후부터 박학기와 유영석의 노래는 생에 처음 마주했던 그날의 콘서트장을 생각나게 하고 무대에 뿌려졌던 코끝을 간지럽히던 스모그 향기를 맡게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어느 가을을 자꾸 서성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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