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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Aug 08. 2023

양배추김치와 땡도넛

억세고 달달한 양배추에 고춧가루 양념이 군데군데 뭉쳐있는 양배추김치가 먹고 싶은 날이다. 무더웠던 여름방학, 엄마가 전날 양배추김치를 담가 식탁에 올려놓으면 느지막이 일어나 밥 한 공기 손에 들고 흰쌀밥을 시뻘겋게 물들여가며 쩝쩝거리며 먹던 그 기막힌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점심은 조금 색다르게 구수한 보리차에 밥을 말아 숟가락에 한술 떠서 위태롭게 양배추김치를 올려놓고 떨어뜨릴까 봐 조심스럽고 재빠르게 입에 넣는다. 고춧가루가 물만밥에 둥둥 떠다녀도 개의치 않고 마지막 한 톨, 한 방울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입안에 고춧가루양념의 향이 오래 남아 감돌던 그 맛의 기억.


저녁에는 조금 푸짐하게 먹기 위해 찬장서랍 속 신문지에 싸여있는 김을 두어 장 꺼낸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살짝살짝 양쪽 번갈아가며 구우면 고소한 향기에 코가 벌렁거린다. 밥을 싸서 간장을 찍어 입에 한가득 밀어 넣은 후에 양배추김치 두서너 점과 같이 질겅질겅 씹어 삼키면 김의 달달함과 양배추김치의 칼칼한 조화가 입에 착착 감길 만큼 기똥찼던 맛.


그렇게 세끼 내내 먹어도 그다음 날 어김없이 상에 올리게 되는 양배추김치가 요즘 간절하게 그립다. 하지만 직접 담가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그 맛을 흉내 낼 수 없을 거라는 이유만이 아니다. 4층 작은 빌라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던,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작은 행복, 떠올리면 코끝까지 맹맹하게 차오르는 눈물과 콧물을 감당할 자신이 내겐 없는 것 같다.




밀가루에 버터를 섞어 반죽을 만들어 소주병으로 문질문질 납작하게 간장종지가운데를 꾹 눌러 테두리를 떼어내면 안에 동그란 부분은 땡도넛이 된다.

뜨거운 식용유가 가득한 프라이팬에 반죽을 넣으면 가벼운 몸으로 회오리치며 모양을 갖추며 올라오는 도넛 들.  긴 나무젓가락으로 하나씩 건져 올려 기름을 빼고 식히는 동안 노릇노릇한 깔과 고소한 향기에 취해 참지 못하고 뜨거운 채로 한입 베어 물고 만다. 입천정이 너덜너덜 해져도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진저리 치게 맛있던 도넛. 그것들을 커다란 김치통에 담은 후 설탕을 들이붓고 통째로 들고 팔이 뻐근할 정도로 흔들고 나면 하루종일 다리사이에 끼고 먹어도 남을 만큼 푸짐하고 맛 좋은 간식거리가 완성된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땡도넛만 골라먹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던지. 향기까지 먹어치우고 싶은 버터맛이 입안에 가득한, 어느 정도 딱딱하고 어느 정도 씁쓸하기도 했던 그 맛이 요즘 입안을 자주 들락거리다가 이내 아쉽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배를 두드리면서도 쉴 새 없이 집어먹던 도넛 생각에 꼴각꼴각 목젖이 간질간질해지는 날이다.엄마와 밀가루 반죽을 만들면서 나누었던 수많은 얘기들을 기억할 순 없지만 그 행위 속에 소소하게 묻어있던 행복들이 부쩍 그립다.


그러고 보니 엄마만의 맛이 났던 음식들이 참 많기도 하다.막걸리를 넣어 반죽해서 만든 빵, 넓적한 어묵을 잔뜩 썰어 넣은 김치찌개, 추석날만 되면 한솥 가득 만들어 놓았던 돼지갈비찜, 밤고구마를 깍둑 썰어 간장에 바짝 졸여 만들었던 우리 집만의 고구마조림...... 오늘따라 그 맛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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