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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02. 2023

떡볶이 50원어치

"할머니, 떡볶이 50원어치만 주세요."

집에서 나와 노란 대문집을 지나면 작은 구멍가게가 보이 맞은편에 할머니떡볶이집이 있었다. 내 나이 열두 살 때였다.

간판도, 문도 없는 1평 남짓한 비좁은 떡볶이집 안에는 사람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가 벽에 바짝 붙어있었고 떡볶이 접시를 올려놓을 테이블 따윈 없었다.  접시를 손으로 받쳐 들고 먹어도 그 누구도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플라스틱 접시에 떡 대여섯 개와 납작한 어묵이 덤이었던 윤기 자르르했던 할머니떡볶이의  맛을 과연 어떤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밀떡 특유의 구수한 향이 스쳐 지나가고 나면 입에 딱 떨어지게 감기는 양념맛이 기가 막혔던, 접시바닥에 찰랑대는 국물까지 떡에 찍고 또 찍어 남김없이 먹어 해치우던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할머니, 핫도그 하나만 주세요."

할머니떡볶이집의 메뉴는 딱 두 가지였다.

떡볶이랑 핫도그. 초벌이 되어있는 핫도그 소시지에 끈적한 밀가루 반죽을 돌돌 말아 입히고 나서 끓고 있는 기름솥 틀 핫도그 막대를 고정시키면 작은 기포들이 춤을 추며 올라온다. 할머니는 기름의 온도와 시간을 기가 막히게 감지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핫도그에 설탕을 듬뿍 바르고 케첩을 뿌려주고 나서 50원을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 할머니의 기름 묻은 손은 언제나 구릿빛으로 반짝였다. 핫도그를 받자마자 케첩부터 핥아먹고 더 뿌려달라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그 순간의 기억까지도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다. 소시지를 온전히 남겨 마지막에 먹기 위해 조심스레 살점을 뜯어먹던 그 맛은  어떤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날이 저물 때까지 이따금씩 허리를 두드리며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루종일 좁은 동선을 왔다 갔다 할 뿐 그 어떤 일탈도 없다. 큰 팬에 물을 붓고 고추장을 넣어 휘휘 고, 붙어있는 떡을 떼어 넣고 또 휘휘 고, 눈대중으로 양념을 넣고 나서 또 휘휘 고......

신기한 모든 양념을 일일이 저울로 잰 듯 단 한 번도 간이 짜거나 싱거웠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긴 막대에 소시지를 끼우고 밀가루를 조그맣 입혀 튀겨서 식혀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 위에 밀가루를 크게 바르고 튀김가루 묻혀서 또 튀기고......

생각해 보면 핫도그의 크기가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이 일정한 것도 놀랍지만 단 한 번도 태운적도  익힌 적도 없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할머니떡볶이집은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었다.

늦은 적도, 문을 닫은  본 기억도 없다.

언제나 변함없던 할머니떡볶이집, 그리고 똑같았던 내 주머니사정.

100원치를 사 먹을 만큼의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매번 아쉽고 감질나는 50원어치에 만족해야 했고 아쉬웠기에 더욱 입에 착착 붙게 맛있었던 떡볶이 50 윈어치. 


지금 이 상태로 두둑한 지갑을 들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떡볶이 50원어치만 먹을 것 같다.

여전히 핫도그에 케첩을 더 발라달라는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감질나는 아쉬움이 기막힌 맛을 내는 최고의 조미료 중에 하나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에, 나는 또다시 50원어치만 사 먹고 입을 쩝쩝 거리나무의자에서 일어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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