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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Apr 07. 2023

우린 모두 가난했기에

동그란 원통 안에 감자칩이 소복하게 들어있다.

차곡차곡 겹겹이 쌓여있는 감자칩은 양이 많아 수일 내로 바닥을 보이는 법이 없다. 몇 날며칠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식탁 위나 책상 한구석에 마치 과자가 아닌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민학교 때도 그 감자칩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흔한 과자도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집이든 감자칩 통이 하나씩은 있었다. 꼭 한통씩만 있었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동그란 통이 보이면 우린 궁금했다. 안에 내용물이 있는지, 없는지. 놀이에도 집중을 못하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하다가 능청을 떨어대며 친구에게 한마디 건넨다.

"저거 뭐야?" 혹은 "와~  감자칩이다. 우리 집에도 있는데......"

그럼에도 눈치 없이 뚜껑을 열어보이지 않는 친구가 답답해서 이번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속에 감자칩 있어?"

"어? 이거? 이거...... 빈통이야."

친구가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통을 뒤집어엎으면 그 안에서 반짇고리나 단추 같은 것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과자가 들어있을 거란 기대가 무너지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어느 집이건 통 안에 감자칩이 온전하게 들어있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린 먹어 본 지 오래되어 맛을 잊어버린 채 통에 남아있는 옅은 향기로나마 어떤 맛일지 상상해야 했다. 형제가 둘러앉아 감자칩 한통을 너 하나. 나 하나 가루까지 나눠먹고 엄마는 빈통을 버리지 못해 물건을 담아두는 작은 세간을 만들었다. 그 통을 볼 때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켜야 했던 일이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게 우리 집 일만이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쥐가 갉아먹은 세숫비누로 손을 닦던 영선이네 집도, 변소가 멀고 부엌이 깊은 곳에 살던 진주네 집도, 항상 떡볶이 50원어치를 사서 동생과 나눠먹던 영석이네 집도, 그렇게 우린 모두 가난했기에. 어느 집이든 감자칩통 안에는 과자가 아닌 반짇고리가 들어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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