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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Mar 09. 2024

망쳐버린 점심식사

맛없는 식당 때문에

  지난 요일 점심에 나는 밥 하기가 싫었다. 아이들이 외식을 채근해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산책을 하다가 외관이 멀끔한 식당엘 들어갔다.

  큰애는 설렁탕을, 작은애는 물냉면을, 나는 쫄면을 시켰다.

  앞서  손님이 세 팀이나 있었는데 다들 맹물만 홀짝이고 있었다. 배가 고파 아랫배가 저릿한데 우리 차례는  같았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음식이 하나씩 도착했다. 옴마야, 냉면은 소태였다. 쫄면은 면이 뜨끈뜨끈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설렁탕이었다. 물보다 더 투명한 깔의 육수, 당연히 맛도 밍밍했다,  큰애가 소금을 뿌리고, 후추를 쳐서 맛을 내보려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은 모두 나왔는데 여전히 배가 고팠다.

 옆테이블의  돈가스맛있어 보여 가로 주문했다. 짙은 갈색 소스에 묻혀버린 돈가스의 자태는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괜한 돈지랄을 했구나. 칼질을 하는데 질겅거리는 이물감, 입에 넣는 순간 비계가 씹히고 고기비린내가 퍼졌다.

 화가 났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차양만들며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저기요. 설렁탕이 맹탕이에요. 전에는 맛있었는데..."  전에는 맛있었다니,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서로의 기분을  고려한 나름의 재치였다고 해두자.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러 카운터 앞으로 갈 때까지도 그에 대한 답은 오지 않았다.

 "... 주인분께 얘기하셨나요? 설렁탕이요."

 "아... 잠시만요."

 멀거니 서있다가 주방으로 간 아르바이트생과 사장의 대화가 들렸다.

 "뭐? 전에똑같이 해서 문제없다고 전해. 상한 음식을 준 것도 아닌데 왜 난리래."

 사장은 주방에서 얼굴도 내밀지 않은 채, 하지만 들으라는 듯 쩌렁쩌렁하게 말을 쏟아냈다. 화가 치밀었지만 옥신각신할 힘이 없어 입을 닫아버렸다.


 집에 돌아왔는데 체기가 있었다. 아이들까지 화장실을 들낙거리며 설사를 해댔다. 명치를 쓸어내리며 씨근거리다 소심하게라도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핸드폰을 열었다. 5개의 별 중에 하나를 짓이기듯 누른 나는 간명하게, 이렇게 썼다.

'설렁탕을 시켰는데 맹물을 한 뚝배기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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