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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May 30. 2024

그 눈빛

  집 앞에는 무밭이 지천이었다. 신선한 바람이 부는 이면 무꽃이 가득 피어 꽃자수 이불을 덮어놓은 듯 휘황.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 옆에는 작고 예쁜 우체국이 있었다. 나는 혼자 오가다 우체국 계단에 쭈그려 앉아 인형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뭐 하고 노니? 이쁘게 생겼네. 몇 살이야?

 우체국 안에서 나온  아저씨히죽히죽 말을 걸었다.

 ... 7살이요.

 나는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억지로 꺼내어 대답했다. 백색 유니폼을 입은 그의 얼굴에는 번질번질 기름이 흘렀다. 멋꽤나 부린다는 아저씨들 옆에 가면 풍기는 스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의 눈빛이 돌연 요상해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눈빛에 체했는지 연신 딸꾹질이 나왔다. 그는 귀엽다는 듯이 손을 뻗어 머리를 만지려 했다. 나는 멈칫하다 가지고 놀던 인형을 들고 사력을 다해 뛰었다.  그가 쫓아오는 것 같아 등이 찌릿찌릿했다. 한참을 뛰다가 멈춰서 돌아보니 다행히 그는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숨을 골랐다. 샌들 안에 발가락이 흙먼지로 새까매졌다.

 다음날 엄마와 손을 잡고 걷고 있는데 낯익은 스킨 냄새가 훅 끼쳤다. 불안한 마음에 옆을 보니  그가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이쁜이, 엄마랑 어디 가는 중이야?

 나는 엄마뒤로 몸을 숨겼다.

 왜 그래. 아저씨가 이쁘다는데.

 엄마는 속 모르는 소리를 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느끼한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하얀 유니폼만 보면 똥이 빠져라 도망을 갔다. 나를 해할 것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에워쌌다.


 그는 어쩌면 그냥 어린애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쓸데없이 생각이 깊은 아이라서 , 모든 게 나의 억측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느글느글한 눈빛이 선연한 건 분명 그의 탓이다. 불규칙하게 실룩거리던 눈썹, 기름을 잔뜩 삼킨 듯 번드르르한 목소리, 멀리서도 나를 보면 유난히 빨라지는 것 같던 발걸음까지 모두가 의도적이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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