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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Dec 24. 2024

1. 초경

팔자주름

                                            1


  잔뜩 찌푸린 엄마의 얼굴은 잡풀로 뒤덮여 있다. 언제부터인지 팔자주름은 엄마의 인상으로 남아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팔자주름뿐이 아니다. 이마, 눈 언저리, 입가까지. 그것들은 안식처를 찾은 듯 떡하니 자리를 틀고 깊고 나른하게 다리를 뻗고 누워있다.

  오늘따라 상한 이야기들을 방언처럼 터트리고 있는 엄마 곁에서 나는  영혼 없는 대답으로 응수하며 세간살이에 내려앉은 먼지를 훔친다.

  정연이가 왔었어. 아까도 오고, 어젯밤에도 오고, 요즘 부쩍 집에 들렀다 가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먼지를 닦고 세탁기 안에서 꺼낸 빨래를 신경질적으로 털어서 건조대에 다. 이제는 아예 입을 꾹 다문채 이따금  고개를 끄덕여줄 뿐 입을 움직이는 걸 잊은 사람처럼 묵묵하고 삐딱하게 집안일에만 몰두한다.

  정연이가 왔었다고.

  엄마는 절규하듯 소리를 내뿜는다.

  그만 좀 하세요.

  어쩜 저렇게도 집애가 차가운지 몰러. 지 언니랑 달라도 너무 달라.

  빨래 금방 널고 밥 차려드릴 테니 앉아 계세요.

  엄마는  알아듣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얼거린다.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엄마가 입을 움직일 때마다 입가에 자글거리는 주름들이 물결친다. 포말처럼 밀려온다. 엄마의 한을 닮은 팔자주름이 움찔거린다.  깊고 움푹한 그 골은 엄마의 인상을 삼켜버렸다.

  휴우.

  내 한숨짓는 입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의 목소리가 고막을 할퀸다.

  젊은 년이 무슨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고 그래. 정연이가 왔었다고. 네 언니가 왔었다고, 이년아.

  맞아, 그날도 이렇게 햇살이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한 여름이었어. 숨쉬기 힘든 낮을 보내고 어스름이 찾아왔었지. 온갖 벌레들이 입을 쩍쩍 벌리고 울어재끼고 바람의 향기에 텁텁한 열기가 묻어있는 그런 여름밤이었어. 30년 전이었지, 그땐 엄마의 팔자주름도 그다지 깊지 않았었던 것 같아. 지금처럼 투박하지도, 지금처럼 눈과 귀가 멍하지도 않았던 엄마,  야리야리하기도 하고 무척 날렵했던 엄마,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건 고막을 찢는 쩌렁쩌렁한 목청 하나뿐인 것 같아.

  정연이 언니, 그녀의 번들거리던 머리카락이 눈앞을 스친다.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있던  그녀의 향기가 코끝을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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