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건물 앞,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이것저것 미래에 대한 고민, 잡다한 생각들에 차 있던 중, 문득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가 궁금해졌다.
돌이켜보면, 난 항상 내가 '못하는 것'에 집중해왔던 것 같다.
끈기가 없어한 일을 붙잡고 오래 노력하지 못한다던가,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해 신뢰를 잘 받지 못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내가 뭘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금방금방 나열할 수 있는데, 뭘 잘하는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였다. 항상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글을 쓴 사람이, 정작 자신의 긍정적인 면은 보지 못한다니. 그래서 이번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일단,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 그간 사람들이 말해왔던 내 장점으로 시작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언어능력이다.
보시다시피 글을 쓰는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지만, 난 항상 말을 조리 있게 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이 능력을 이용하여 학창 시절 반장, 부회장 선거 등에 나가 당선될 수 있었고,
뭔가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부모님께 짤막한 프레젠테이션을 보여드려 얻어낼 수 있었다.
대학 조별과제에서도 발표는 거의 내가 맡는 편이니, 아마 이 능력은 확실한 것 같다.
또 뭐가 있을까? 이제부터는 전부 스스로 생각한 장점들이다.
조금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지만, 사교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주변인들과 대화를 할 때면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더 집중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흘러가도록 해준다. 그렇다고 아예 주관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상대방이 내 나름의 선을 넘으면 서로 맘 상하지 않는 선에서 논쟁으로 해결하는 능력도 있는 것 같다. 이렇다 보니 살아오며 일어나는 싸움들에서 대부분 난 당사자보다는 중재자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거의 '적'을 만들지 않고 살아왔다. 물론 이 능력은 확실히 논쟁의 여지가 존재한다. 모두의 입맛을 맞춰준다는 것은 자연스레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냐고 말이다. 솔직히 완벽히 반박할 수는 없지만,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거짓을 말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해온 결과 어느 정도는 가능해졌다.
음. 슬슬 힘들어지지만, 계속 나열해보도록 한다.
창의력 또한 있는 편이라 생각한다.
편협한 사고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리 틀고 저리 틀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서일까.
꿈도 참 기상천외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번뜩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들도 참 많다.
정이 많아서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정이 없어서 쉽게 돌아서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다 보니 참 추억할 것들이 많으며, 쉽게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여기까지만 해보자.
낯부끄럽기도 했지만, 잠깐이나마 내 장점을 나열하면서 조금 더 나에 대하여 알아간 시간이 된 것 같아 좋다.
우리는 백과사전에 실린 단어처럼 한 문장으로 정의될 수 없는 이중성을 가진 존재들이기에,
스스로를 어떤식으로 해석할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굳이 필자처럼 사람들 다 보는 곳에 적을 필요는 없으니,
여러분도 개인 노트에 다 가라도 한 번쯤 시도해보시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