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2일
오늘은 내가 한국을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다.
나는 지난 8월 미국 버지니아 주 한 대학의 신입생이 되어 입학하게 되었고, 인생 첫 자취를 시작했다.
지금 내 심경을 정리하자면.. 뭐랄까 너무 평화로워서 두렵다.
부모님께서는 내 유학에 엄청난 학비를 쏟아부으셨고, 내가 현지 정착에 실패하면 우리 집안은 분명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강아지까지.
우리 가족 6명이 함께하는 단란한 일상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암에 걸려 6년째 무직. 암의 진행은 멈췄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강아지도 벌써 16살이니 이제 무지개다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와 동생을 키워주신 할머니께서는 관절이 아파 좋아하시던 등산도 못 가신 지 오래되셨고, 올해로 80이 넘으신, 영원히 정정하실 것만 같던 우리 할아버지마저도 작년 즈음 암에 걸려 투병 중이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집안을 홀로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의 정년퇴직은 채 10년이 남지 않으셨으니.. 그렇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 난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나약한 것 같다.
그냥 우리 집은 항상 그렇게 평화롭게 있을 것 같고,
집에 가면 강아지가 나를 향해 항상 짖어줄 것만 같고 부모님은 늘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주실 거라고 믿고 싶은 것 같다.
참 이기적 이게도, 난 이미 부모님 얼굴에 생긴 주름살을 눈치챈 지 오래인데.
모든 게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외면할 수 없기에 지금 할 수 있는 나름의 노력을 한다.
과제를 열심히 하고, 수업도 째깍째깍 나간다. 특기를 살려 학교 Varsity로 뛰며 장학금도 벌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최선의 직업이 무엇일지 찾고 있다.
문제는 남들과 나를 비교할 때 온다.
듣기로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나보다 2~3배쯤 열심히 사는 것 같다. 그 '스펙'이라는 것을 쌓기 위해서라던데.
F-1 비자로 체류 중인 내가 미국에서 내가 쌓을 수 있는 스펙이라곤 인턴쉽은커녕 맥도널드 알바가 끝이다.
난 정말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바로 그 소위 말하는 "집안 말아먹을 녀석"인가?
자식 내미한테 수억 학비 들여놨더니 달랑 졸업장 하나 들고 돌아온다면 그리 될 것이다.
반드시 비자 돌림판까지라도 들어가야겠지.
그래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제 겨우 입학 1달 차인데, 전공수업은 시작도 하지 않았단 말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정도의 노력이 최선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가슴이 부정한다.
왠지 이렇게 살 만해서는 안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