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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Mar 31. 2024

로컬 크리에이터와 콘텐츠 사업가, 그 사이의 일들

1분기의 일 실험과 그 속에서 배운 것들

이제 나는 부정할 수 없이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 개인적인 기질상 창작자에 더 가깝기도 하고, 숫자나 구조를 생각하는 것이 내겐 익숙하지 않았다. 사업을 한다는 표현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일이기에, 2024년 1분기는 조금은 결연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 같다.


현재 나는 패치워크니터 두 개의 자체 브랜드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다. 패치워크는 동인천 배다리 지역을 기반으로 '일과 삶의 방식, 동네의 가능성을 실험하자'는 목표로 다양한 공간과 콘텐츠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는 브랜드다. 니터는 '문화를 만드는 일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이미 가진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브랜드다.


2023년에는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기초 자산을 쌓는 시기였다면 2024년은 그 자산을 토대로 '일'을 만드는 시기인 것 같다. 이론이나 가설이 아닌 실전인 것이다. 잘 하고 싶어서 매순간 애썼지만 현실은 내 마음과 꼭 같지는 않았고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며 실험하는 마음으로 1분기를 지나왔다. 1분기의 마지막 날, 1분기의 일 실험과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본다. 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도 힌트가 되는 글이기를.



1.
작더라도, 혜택 제공하기.
결국엔 감사를 표현하는 일.


- 실험 브랜드 : 동양가배관

- 실험 질문 : 쿠폰을 만들어 작은 혜택을 제공하면 재방문률이 높아질까?


오픈 이래 처음으로 쿠폰을 만들었다. 쿠폰 안 하냐고 손님들이 종종 물어보셨었지만 내가 쿠폰을 모으는 성격이 아니라 꼭 필요한가? 싶어서 넘겼던 그것. 그런데 세상에나. 쿠폰을 시작한 이후 재방문률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단체손님이 늘었다. 쿠폰을 너무 반겨주시고 꼬박꼬박 챙겨서 와주신다. 생각해 보니 동양가배관은 지극히 로컬 기반의 공간이라 고정 손님이 많은데 그 동안 '혜택'이 없었던 것. 손님들에게 작더라도 혜택을 드리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 재방문과 재구매로 마음을 돌려주신다는 걸 배웠다.





2.
이미 있는 것을 다르게 제안하자.
그리고 꾸준히 하자.


- 실험 브랜드 : 동양가배관

- 실험 질문 : 이미 있는 것을 다르게 엮어 시즌 기획 상품으로 만들면 어떨까?


설날, 가정의 달, 추석, 연말. 적어도 이때만큼은 기획 상품을 만들자고 결심하자마자 설이 되었다. 꺄악. 어떡해? 그래서 너무 힘 주지 말고, 이미 있는 것을 잘 엮어보기로 했다. 스테디셀러 커피인 수묵화와 단청, 여기에 설 기념으로 싱글 오리진 1종을 새로이 로스팅했고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감싸고 택을 달았다. 물론 이것도 패치워크의 비주얼 디렉터로 합류해 주신 지현님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0세트를 준비했는데 그 이상을 판매했다. 이미 있는 것을 조금 다르게 구성하고 제안하기만 해도 손님들은 새롭게 여겨주시고 구매하신다는 걸 알았다.


영민 작가님과의 콜라보레이션 상품도 기획했다. 이 역시 작년 언노운 북 페스티벌 시즌에 협업해서 개발한 아트워크를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례다. 이렇게 상품을 만들고 오픈하는 과정에서 배운 게 있는데 하나를 빵! 터트리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해서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설날 에디션 오픈 과정에서 괴로워하는 우리를 보며 멀리서 찾아와 경험을 나누어 주신 맥파이앤타이거 만기님, 세미님께 특별히 감사하다.





3. 커뮤니케이션은 단계별로, 현장에서는 직관적으로.


- 실험 브랜드 : 패치워크, 동양가배관

- 실험 질문 : 우리가 만든 콘텐츠(상품, 서비스)를 어떻게 알려야 할까?


설 시즌 오프라인에서 쌓여 있는 상자들을 보고 "저거 하나 주세요."하고 곧바로 구매해 가시는 손님들이 많았다. 나에게 익숙한 '언어', '텍스트'가 아닌 직관적으로 와닿는 '이미지'와 '연출'의 힘을 배웠다. (백종원 선생님이 푸짐해 보이게 쌓아놔야 한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온라인에서는 우리가 가진 이야기를 한번에 와다다 쏟고 끝나는 게 아니라 천천히, 하나씩, 징검다리를 놓듯 콘텐츠로 풀어내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특히나 나는 이야기를 깊게 탐구하고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잘하지만 내가 그 안에 깊이 몰입되어 있다보니 이걸 가볍게, 직관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이 부분은 1분기에 함께 작업해 주신 프리랜서 마케터 지혜님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오랜 시간 쌓아놓은 콘텐츠들을 단계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4.
적절한 광고는 필요하다.


- 실험 브랜드 : 니터

- 실험 질문 : 우리가 만든 콘텐츠(상품, 서비스)를 알리는 데 광고는 필요할까?


니터는 올해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쌓는 것이 목표다. 연초부터 유진님과 대화를 나누며 ’기획과 디자인 사이‘라는 오리지널 워크숍을 개발하고 오픈했다. '브랜드 드리머' 버전과 '브랜드 스타터' 버전 두 가지로 운영하고 있다. 워크숍 오픈 과정에서 인스타그램 광고를 집행해 봤는데 신기하게도 광고를 통해서 오신 분이 반이나 되었다.


우리를 전혀 모르고 '니터'라는 브랜드를 보고 오신 거라 의미가 더 컸다. 니터의 메시지와 이미지, 포트폴리오를 보고 설득되었다는 것이다. 작년에 유진님과 니터의 브랜딩을 진행했지만, 소규모로 일하다보니 그 효과를 피부에 닿게 느끼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나는 병적일 정도로 광고를 하지 않는 것에 집착했었는데 나에게 맞는 친구들을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잘 활용해보자!'로 생각이 바뀌었다.





5.
'내가 머무를 자리'를 내어줄 것


- 실험 브랜드 : 패치워크, 코너룸

- 실험 질문 : 코너룸을 오픈하면 패치워크의 공간 경험은 어떻게 달라질까?



오랫동안 구상하고 준비하던 공간, 코너룸을 오픈했다. 매일 누군가가 상점으로 운영할 수 없기에, 예약제 작업실로 먼저 오픈했다. 사실상 패치워크에서 '프린트아웃'은 프로그램 기반의 공간이고 사무실로도 사용하고 고 있다 보니 평소 방문시 카페 외에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 요소가 없다는 것이 계속되는 아쉬움이었다.


코너룸 둘러보기 : http://patchwork.incheon.kr/cornerroom


3월 동안 커뮤니티 기획자, 문화 기획자, 브랜드 컨설턴트,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에디터, 마케터 등 다양한 분야의 기획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지역, 그리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반나절의 스테이, 작고 사적인 거점 공간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1층 동양가배관 카페에서 체크인을 하고 4층으로 올라가 짐을 내려놓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머무르며 지역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방.



6.
한계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 있다.


- 실험 브랜드 : 패치워크, 코너룸

- 실험 질문 : 코너룸에서만 가능한 콘텐츠는 무엇일까?


코너룸은 아주 작은 방이라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할 수 있는 재미난 기획들이 있다. 한 분이 적어주고 가신 "마이크로 북토크를 해보면 어때요?" 라는 말을 힌트 삼아 마이크로 팝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월 중 출판사 터틀넥프레스 보희님, 동인천의 보물 한수희 작가님이 코너룸에서 라이브 북토크를 하셨는데 너무 좋았다… 작고 즐거운 일을 벌이고 싶은 출판사 여러분! 마이크로 팝업을 펼쳐보고 싶은 크리에이터 여러분! 코너룸과 함께 합시다! 코너룸이어서 가능한 일들을 많이 시도하고 보여주고 싶다.




7.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하자.
결국 그걸 잘해야 한다.


- 실험 브랜드 : 동양가배관

- 실험 질문 : 동양가배관의 매출을 늘리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오프라인 매출이 많이 늘어서 뭐야?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보니 비결은 원두 상품이었다. 동양가배관은 3년간 존버하면서 어느덧 로스팅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고 원두를 찾으시는 손님들이 늘어 아예 오프라인에서도 500g 단위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게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주말마다 사러오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다.


동양가배관은 브랜드 이미지나 스토리를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결국 본질은 커피다. 커피를 잘 해야 그 모든 게 의미가 있는 건데 그건 처음부터 밥 먹고 로스팅밖에 안하는 (사람도 안 만나는 극 I형) 로스팅 광인이 대표라서 걱정은 없다…  애초에 동양가배관 브랜딩을 할 때부터 대표의 기질을 고려해서 작업했기에, 커피의 맛과 브랜드의 이미지가 모두 차분하고 깔끔하며 섬세하지만 무던하다.





8.
우리의 바이브와 스피릿을 팔자.


- 실험 브랜드 : 패치워크, 프린트아웃

- 실험 질문 : 결과물에 얽매이기보다 우리의 바이브와 스피릿에 집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오프라인 공간이지만 공간에만 얽매이지 않기 위해 '바이브와 스피릿을 팔자'는 슬로건으로 1분기의 일들을 진행했다. 온라인 프로그램도 3회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앞으로는 온라인 프로그램도 자주 열 계획이다. 그래도 또 오프라인만의 바이브가 있다.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들 때 발생하는 독특하고 재미난 기운이 있다.


이번에는 왜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는지 1분기에는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답변을 수집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말은 "여기 오기 전엔 제가 외로웠다는 걸 몰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는 말과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만들어가려고 하는데 힌트가 필요했어요."라는 말. 우리의 역할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객 인터뷰는 하고 볼 일!




9.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미래와
일의 의미를 끈질기게 대화하되

일은 깔끔하고 명확하게 하자.


- 실험 브랜드 : 패치워크

- 실험 질문 : 매일 함께 하지 않으면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할까? 우리는 왜 함께 일할까?


1분기에 집착적으로 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왜' 우리가 함께 하는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삶에서 무엇을 하고 싶고, 그게 지금의 이 일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대화했다. 이런 일들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일은 아니었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직원으로 채용하여 9 to 6 출근해서 시간을 점유하며 일하는 것) 일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대화하고, 인정하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새롭게 일하는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식들을 공부하고 적용해보고,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수정해나가는 중이다. 이것 역시 올해 내내 해나가지 않을까 싶다. 일의 시스템과 구조를 설계하고 제안하는 일이 지금의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을 실험한다는 건, 안전한 신뢰감이 뒷받침이 되어주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패치워크가 실험적으로 일하는 것도 오랫동안 합을 맞춰오며 신뢰를 쌓아온 슈퍼소닉 스튜디오의 영진님과 주희님, 비치, 그리고 지현님과 함께라서 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 1분기.



10.
때로는 직감을 믿자.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진 캠프가 열리던 어느 날, 마침 베이징에서 온 바리스타 데이브와의 작은 커피 팝업을 열어 하루종일 공간이 북적였다. 이 조용한 거리에서 우리 공간만 시끌시끌한 것이 꼭 마법 같았다. 문 열면 사람 한 명 없는 조용한 거리. 닫으면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시끌시끌.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감각을 잘 보관해 두려고 한다.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이 느낌. 때로는 직감을 믿어줘야 한다.


그날의 영상 기록

https://www.instagram.com/reel/C3fVbg_rtfG/?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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