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이 겪은 감옥 생활을 기록하다
‘어떤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나. 조폭한테 처맞으려나. 자기소개는 뭐라고 해야 되나….’
기다란 복도에 다닥다닥 방문이 붙어있다. 방 개수가 15개는 족히 넘어 보인다. ‘6상8’… 그러니까 나는 이 중에서 8번째 방을 쓰게 됐다. 내 또래로 보이는 교도관이 사무적인 말투로, 그러나 생각보다는 친절하게 맞이한다.
·교도관 : “박훈민씨? 제가 6상 담당이고요. 코로나 때문에 2주간 독방이에요. 근데 구치소에 공간이 부족해서 방에 한 명 더 들어올 수 있어요. 2주 후에 혼거실 신입방 갔다가 본방(本房)으로 이동합니다.”
‘휴우...일단 독방이라 다행이다.’
사람의 욕망은 때로는 더없이 소박해진다.
·교도관 : “자, 그러면 들어가실게요.”
·나 : “저 잠시만 20초만요. 손 소독제 좀 바를게요.”
'아직! 아직! 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교도관 : “들어가면 또 적응돼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자자 들어갑시다.”
'띠릭!♬' (솔♭레)
전자음과 함께 방문이 잠겼다. 독방은 끔찍하게 작다. 무슨 방이 이렇게 작을까. 방문 밖에 붙어있는 팻말엔 5.05㎡라고 쓰여있었다. 3.3으로 나눠보면 1.5평 정도다. 여기서 화장실과 싱크대를 빼면 0.8평 정도 되겠다. 벽이 좌우에서 밀려 들어오며 나를 덮치는 느낌이다. 답답한 공간에 들어오니 숨쉬기가 힘들어 문에 뚫린 작은 구멍에 얼굴을 갖다 댔다. 군데군데 김치 자국이 묻은 걸 보아하니, 이 구멍을 통해 밥을 받아먹는 것 같다.
벽은 A4용지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어있고 나무 무늬 모노륨 바닥엔 ‘후랑크 소시지’ 스티커가 일렬로 6개 정도 붙어있다. 장판이 떠서 스티커로 임시조치를 해놓은 것 같다. 그래도 바닥에 열선은 깔려있나 생각보다 온기가 있다. '이건 고무적이네!'
투명 유리문을 열자 화장실이다. KTX 열차 화장실 크기 정도 될까 싶다. 변기 앞에 쪼그려 앉으니 빈틈없이 꽉 찬다. 여기서 볼일도 보고, 몸도 씻어야 한다. 불현듯 현자의 타임이 밀려온다. 화장실 창문 너머로 신축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어느덧 해가 졌나 하늘이 까맣게 변해간다.
“그래. 여긴 푸*지오야. 나는 푸*지오 단지 끝동에 있는 거다.”
대야에 찬물을 받아 땀과 눈물을 지우고 벽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오늘 참 더럽게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방 벽에 TV도 달려있다. 20인치쯤 될까 싶다. 전원을 켜니 방송이 나온다. SBS, KBS, MBC만 나온다. 케이블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다. 세상과 연결되는 이 느낌. 모포를 깔고 누워 SBS ‘생방송투데이’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은 낫다. 인간은 범사에 ‘일희일비’하는 하찮은 존재인가.
하늘색 바람막이를 입은 장발 남성이 방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얘가 사소구나….'
·사소 : “사장님, 지금 모포 깔면 안 돼요. 8시 넘어서 까세요. 식사 못 했을 테니 빵 드세요. 근데 뭐로 몇 년 받았어요?”
·나 : “1심에서 10개월 나왔어요. 근데 나는 진짜 억울해요. 거래처 여직원이랑 술 먹다가 모텔 갔는데 피곤해서 둘 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리고...”
·사소 : “알만하네. 그런 거로 많이 들어와요. 요즘 ‘성’을 빡세게 봐서. 근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여기 사연 없는 사람 없어요. 보니까 저보다 형님 같은데 애들은 있어요?”
·나 : “딸 하나, 아들 하나...”
·사소 : “아이고, 잘못한 거 맞네. 어쨌든 여기 2주 있으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생각보다는 친절한 친구다. 얘는 뭐 땜에 들어왔을까?’
·나 : “근데 그쪽은 언제 나가요?”
·사소 : “저 다음 달에 나가요.”
·나 : “부럽네요.”
·사소 : “전자발찌 차고 나가는데 부러워요?”
‘음... 전자발찌면 찐성범죄자구나...’
그래도 다음 달에 나간다니 부럽다. 방 안에 갇혀 있는 일반 수용자들과 달리 사소는 사동 복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소지 간’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업무공간에 출퇴근하는 느낌으로 지낸단다. 애초에 ‘사소’라는 말이 ‘사동 청소’의 줄임말인데, 과거엔 일본어로 청소를 뜻하는 ‘소지’라고 부르곤 했다. 어쨌든 마음대로 직립 보행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그것도 다음 달 출소라니. 전자발찌 차도 좋으니 나도 당장 나가고 싶다.
누런 수용복을 입고 ‘보름달’ 빵을 뜯어먹으며 SBS 8시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내 신세가 처량하다. 지난 몇 달간 재판을 받는 동안 마음고생한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차오른다. 긴장이 풀리며 슬픔이 모든 감정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염치없지만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 아이들 생각을 하니 미칠 것 같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인생은 망했다.’
뉴스 볼륨을 키우고 1시간 동안 숨죽여 울고 있는데 갑자기 TV가 꺼지더니 창문 밖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큰 소리가 난다.
“아 씨X! 대한민국 도둑놈들아! 오늘도 고생 많이 했다!”
“철민이 형님 안녕히 주무십쇼!” / “그래 봉식이도 잘 자라!”
“야이 X새끼들아! 조용히 해!” / “너나 조용히 해 X끼야!”
이런 병맛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30분쯤 지나니 메인 전등이 꺼졌다. 모포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나 보조등이 계속 켜져 있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이거 리얼 현실 맞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