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를 연결한 한 줄기의 통로
요즘은 네 살짜리 아이도 휴대폰을 하나씩 쥐고 다닌다.
손바닥만 한 이 기계 안에 세상이 다 들어와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놀라울 만큼 편리하게 만들었다.
연락, 사진, 기록, 은행, 지도, 추억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 그대로 이 폰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이 작은 기계가
삶을 바꾸고, 마음을 무너뜨리고, 또 지켜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살았다.
나에게 휴대전화가 처음 주어졌을 때
방송국에 입사했을 때였다.
사원 복지 차원에서 전 직원에게 휴대폰이 지급되었다.
업무용으로 사용을 대부분 하고
가끔씩 가족 안부를 묻고 친구와 연락 등 용도로 사용됐다.
하지만 내게 전화기는
그저 연락 수단이 아니었다.
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였다.
내 전화번호로 들어오는 것은
가벼운 안부가 아니라,억울한 이의 울음,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
감추고 싶은 진실과, 누군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내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내 전화번호는 곧 약자의 목소리가 들어오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도 내 개인정보는 철저히 통제되었다.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도 사전 확인 후에야 들어올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미지의 어둠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전화 한 통이 가져온 생과 사의 소식이다
한 번은 전국 비디오방에서 청소년 음란물 시청 실태를 취재해 고발했다가
비디오방 업주들이 내 가족에게 협박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내 전화는 더 무겁고, 더 신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전화가 있었다.
미얀마에서 취재 중이던 어느 밤.
전화벨이 울렸다.
“최PD님 맞으시죠…
동굴 탐험대장님이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내 안의 시간이 멈췄다.
어둡고 깊은 동굴 속,
밧줄을 타고 먼저 내려가 우리를 안내해주던 그 사람.
살모사 한 마리가 내 앞을 가르며 다가오던 순간
나 대신 내려가 뱀을 잡아주던 그 사람.
우리가 3개월 동안 전국의 미공개 동굴을 함께 취재하며
서로 의지했던 날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전화기 한쪽에서 들려온 그 작은 문장이
내 가슴 깊은 곳을 무너뜨렸다.
전화는 그날, 한 사람의 죽음을 내게 알려왔다.
그러나 전화는 또, 희망의 문이었다
억울한 사람은
먼저 전화한다.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단 한 군데라도 남아 있다는 사실.
그 믿음을 걸고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그 전화를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내 생명이 다하더라도.
그 전화들은
내가 세상의 부조리한 현장을 찾아가게 했고,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사람의 손을
놓지 않게 했다.
이제야 나는 안다
사람들은 말한다.
휴대폰은 중독이라고.
디지털 문명은 차갑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나의 삶에서 전화기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뜨거웠다.
거기엔
사람의 울음이 있었고,
부르짖음이 있었고,
어떤 날은 마지막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전화기는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저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잇고,
눈물과 진실을 연결하고,
세상의 어둠과 빛을 통과시킨
내 삶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