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남의 고통을 들었던 한 사람의 겨울 성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 오래된 질문 하나가 다시 떠오른다.
“나는 왜 그토록 살아왔을까.
그리고 나는 결국 무엇이었을까.”
30년 동안 나는
남의 고통을 들었다.
어디선가 터져 나오는 절규,
숨기고 감추려던 불의,
고통 속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내 온몸에 받아냈다.
그 일 때문에
아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해도
나는 편집실에 앉아 밤을 새웠다.
아이들이 아파도
아내 혼자 병원으로 달려갔고,
해외 취재를 다니면
아내는 아이 셋을 데리고
해수욕장을 갔다.
나는 그 기분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가 감당해야 했던 그 외로움과
그 무게를 나는 헤아릴 수도 없다.
그저 돌아보면 알 뿐이다.
나는 언제나
가정보다 일이 먼저였고,
나의 개인적 아픔보다
타인의 눈물에 더 흔들렸다는 것.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죽을 만큼 뛰어다니며
남의 아픔을 이토록 내 아픔처럼 끌어안았을까.”
값싼 공명심일까?
명예를 위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어떤 허영이었을까?
하지만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30년을 견딜 수 없다.
나는 단지
남의 고통에 공명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들었을 때
그 울림이 내 안에서 멈추지 않았고
외면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시대의 고통에 반응하고
얻을 것 하나 없어도
억울한 사람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성질
아마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당신은 그 일에서 못 빠져나와.
그러니 집안일은 걱정 말고
바깥일이나 잘하세요“
그 말은 아내의 포기이자
아내의 인정이었고,
동시에 아내의 사랑이었다.
아내가 내 삶을 지켜줘서
나는 30년 동안
남의 삶을 지킬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아내의 삶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나에게 프로듀서는 무엇이었을까
프로듀서란
카메라와 마이크로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듣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프로듀서는
직업이 아니라 태도였고
일이 아니라 나였고
고통이 아니라 소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30년 동안. 그일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피할 수 없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고
누구보다 깊이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나를 묻는다
퇴직한 지 7년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알아본다.
“최국만 PD 아니세요?
그 방송 다 봤습니다.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이 든다.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어쩐지 마음이 시리기도 하다.
나는 단지
내가 사람이라고 느끼는 대로
일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묻는다.
“도대체 나는 누구였을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귀를 끝까지 닫지 않았던 사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 인생의 절반을
남의 고통을 위해 쓴 사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 고통에서 돌아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
그게
나란 사람의 모습이다.
겨울비 소리에 나를 불러본다
지금 창밖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조용히 답해본다.
“나는 사람의 아픔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의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
그걸 깨닫는 것
그것이 노년에 들어선
내 마지막 품위이자
내가 평생 찾고 싶었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