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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밭에 사랑이 자란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 흙을 일구는 일이다

by 최국만


우리가 괴산에 내려와 밭을 가꾸기 시작했을 때,

마음은 풍요로웠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호미 하나, 삽 하나에서 시작한 농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었다.


고추 모종이며 상추, 감자, 들깨까지 이것저것 심다 보면

비료, 모종, 제초제, 농사용 자재 등으로

봄철이면 지출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농기구 하나 사려 해도 기본이 몇 만 원이었다.


한 번은 농약상에 가서 식물영양제와 살충제를 구입하며 푸념처럼 말했다.

“아이고, 이거 너무 돈이 많이 들어요.

올해만 하고 내년부터는 안 해야겠어요.”

그때 농약상 주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국장님, 골프 치시죠?

골프 한 번 나가면 드는 비용보다는 적어요

근데 이 영양제 한 통 사면

뿌리면서 운동도 되고,

밭에 푸르름도 생기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밥이 꿀맛 아닙니까?”


그 말에 나도 웃고 말았다.

도시에서의 여가가 ‘소비’라면,

이곳에서의 여가는 ‘삶의 순환’이라는 걸

그 한마디가 정확히 짚어준 것이다.


사실, 농사는 우리에게 처음이었다.

귀촌 첫해, 우리는 시장에서 모종만 사다 심으면 되는 줄 알았다.

봄이 되자 고추며 상추며 이것저것 사서 심었지만,

서리를 맞아 한밤중에 얼어 죽었고,

다시 사온 모종은 ‘친환경 농사’를 해보겠다고

비료도 농약도 주지 않았더니

잡초와 벌레에 뒤섞여 사라지고 말았다.


텃밭에 나가 보면 허무하고, 서로 눈치만 보였다.

“괜히 심었나…”

“우리랑 농사는 안 맞나 봐…”

그렇게 속상했던 날들을 지나,

우리는 하나씩 배웠다.

씨앗은 때를 만나야 하고,

흙은 정성을 알아보고,

부부는 함께 실패해야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걸.


그 시행착오 끝에,

지금 우리의 텃밭에는 온갖 채소가 자란다.

열무도 자라고, 고추도 자라고, 가지, 들깨, 부추도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부부의 사랑도 함께 자란다.


어느 해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 해 너무 바빠 잡초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는데,

그 무성한 풀숲 사이에 고라니가 새끼를 낳아 놓은 것이다.

우리는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다

간신히 어미에게 새끼를 돌려줄 수 있었고,

그 순간 마음이 벅차고 환했다.

우리 밭이 단순한 땅이 아니라 생명의 터전이 되었음을,

그 조용한 기적이 가르쳐주었다.


또 어느 해에는

애지중지 심어 기른 고구마를

멧돼지가 야밤에 와서 싹 다 먹고 간 일도 있었다.

허탈했지만, 한편으론 웃음이 났다.

“그래, 고라니에게 새끼 방도 내주고,

멧돼지에게 밥도 줬으니

우린 진짜 자연인이 다 됐지 뭐.”


그렇게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와 경이로움을

매해 조금씩 배우고 있다.


봄에는 함께 모종을 옮기고,

여름에는 둘이서 벌레를 떨구고,

가을이면 같이 수확한 고추를 널고,

겨울엔 땔감을 나르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인다.


밭은 정직하다.

정성을 들인 만큼 열매를 주고,

게으르면 잡초가 먼저 알려준다.

그런데 어쩌면 부부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다툼도 있고, 가뭄도 있지만

함께 견디면 어느새 다시 웃음꽃이 핀다.


나는 오늘도 풀을 뽑다 말고

아내를 힐끗 바라본다.

땀에 젖은 얼굴, 허리를 펴며 웃는 그 모습에서

나는 세상의 어떤 풍경보다

더 깊은 사랑을 본다.


우리 밭엔 상추도 자라고, 고구마도 자라고,

고라니도 숨 쉬고,

그리고 사랑도 자란다.

흙 묻은 손으로 지켜낸,

서로를 향한 무언의 응답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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