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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를 찾아 떠난 독일 취재기

구텐베르크의 도시에서 다시 본 ‘세계 최초’의 의미

by 최국만


2001년 9월,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세계는 한국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을 비로소 정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세계 최초금속활자본”이라는 자리는 늘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의 몫이었다.

1455년경에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서는 오랜 세월 동안 서양 인쇄문명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그보다 무려 78년 앞서 직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한국 기록문화사 전체를 다시 쓰게 만든 사건이었다.


나는 바로 그 ‘세계 최초’의 의미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을 세계에 전하고자 독일로 취재를 떠났다.


그 여정은 단순한 해외 취재가 아니라, 한국 기록문화의 자존심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던 날,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많은 사상자까지 발생하던 시기였다.


취재팀 역시 숨이 막힐 듯한 열기 속에서 꼼짝도 하기 힘들었지만, 일정은 멈출 수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구텐베르크의 도시, 마인츠로 향했다.


마인츠 구텐베르크광장에는 인쇄혁명을 일으킨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동상이 서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을 하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붙잡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분이 누군지 아시나요?”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주저 없이 말했다.


“근대 유럽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꾼 인쇄술의 발명가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성서를 인쇄한 사람입니다.”


그들의 답을 들으며 나는 알 수 있었다.

직지가 세계 최초라는 사실은, 유럽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는 기록되는 자가 아니라, 알리는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다시 실감했다.

우리는 마인츠 일대를 샅샅이 취재했다.


구텐베르크 박물관부터 대성당, 성 스테판 성당까지, 인쇄혁명이 태동했던 흔적들을 좇아 기록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직지 발견 이전, ‘세계 최초’로 여겨졌던 성서의 실체였다. 그 원본을 꼭 확인하고 싶었다.


이후 독일 괴팅겐 니더작센 주립대학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사전 승인을 받아 잠시 기다리자, 도서관장은 작은 이동 수레 위에 양피지로 된 구텐베르크 성서를 실어 나타났다.


촬영을 위해 조명을 사용해도 되는지 묻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조명은 색이 바래거나 오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서를 넘겨볼 수 있느냐고 묻자 역시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대신 도서관장이 필요한 장만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이 충분히 이해됐다.

중세의 숨결이 담긴 세계기록유산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촬영팀도 숨을 죽인 채, 한 장 한 장 최대한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이 끝난 뒤 관장은 조용히 말했다.


“구텐베르크 성서는 그 자체로 역사적 보물입니다. 하지만 인쇄술의 확산으로 유럽인들이 글을 인지하고 깨달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죠.


한국의 직지가 더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접했습니다.”


놀랍게도, 직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독일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직지의 존재는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세계 인쇄기 시장의 30%를 장악한 하이델베르크 ,그곳은 구텐베르크의 유산이였다.


우리는 인쇄술이 유럽과 세계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세계 인쇄기 시장의 약 30%를 수출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공장은 그 자체로 구텐베르크 정신의 현대적 계승자였다.


종이만 들어가면 제본·편집·출판까지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어지는 기계 앞에서 나는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발명은 이렇게 수백 년 뒤까지도, 산업과 문화와 지식을 움직이는 거대한 파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국의 청주를 떠올렸다.

흥덕사에서 발견된 금구의 글귀 ‘흥덕사’라는 한 줄이 직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고,


그 한 줄은 결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한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로 이어졌다.


직지와 구텐베르크를 잇는 실, 그리고 내가 찾은 진실

독일을 취재하며 나는 단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직지가 왜 세상에 더 알려져야 하는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의 대중화를 통해 유럽 문화를 바꾸었다.

반면 직지는 이미 78년 앞서 금속활자가 존재했음을 증명하지만, 그 가치는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직지의 등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국의 창조성, 기술력, 문화적 깊이를 증명하는 근거다.


그리고 이 가치를 세계가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독일의 폭염 속에서, 양피지 성서의 숨결이 전해오는 조용한 도서관에서,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공장의 거대한 기계 앞에서 나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역사는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직지는 세계 최초였고, 이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그것이 이 취재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사명이며, 내가 다시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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