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직전의 한 인간이 남긴 마지막 소리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하지만 진천군 오리농장 주인의 아내가 새벽에 걸어온 그 전화만큼
오래, 깊게 남아 있는 목소리는 없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함께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억울한 사람, 절망한 사람,
그리고 더는 갈 곳 없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
그날 나는 진천군의 오리 사육 농가를 취재하고 있었다.
조류독감이 번지던 시기,
농장은 이미 폐사 명령이 내려졌고
그 농부의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오리 울음소리가 사라진 농장 마당은
마치 사람의 심장 소리마저 멈춘 듯
침묵만 가득했다.
농장 주인의 아내는
담담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 침착함 뒤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체념이 스며 있었다.
그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살아야 하니까 버티는 겁니다…”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들의 절박함을
세상에 제대로 들려주기 위해
새벽까지 원고를 붙들었다.
오리는 이들의 전재산이었고,
삶의 전부였다.
한 컷, 한 문장도 허투루 다룰 수 없었다.
그러다 편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새벽 4시,
편집실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린 것은
말이 아니었다.
울음을 삼키는 호흡,
버티려는 목소리,
그리고 무너져가는 인간의 마지막 힘.
“PD님… 남편이… 오늘… 스스로 삶을… 놓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편집실에 있던 후배, 작가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취재란
사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취재란,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
그 무너짐을 함께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순간 나는
PD도 기자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말할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위로도
강이 넘칠 때 한 컵의 물처럼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끝까지 듣는 것.
그녀의 울음은 한동안 끝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목소리를 다르게 듣게 되었다.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삶이 있고,
고통이 있고,
붕괴되기 직전의 마지막 힘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이고,
그 사람의 슬픔 한 조각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사람을 돕는 일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그날
한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오래도록 조용히 울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새벽의 목소리는
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