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선택, 가족의 윤리

피보다 마음이 더 어려운 이유

by 최국만

제4편


기종이에게는 동생이 있다.

세 살 터울로, 경북 문경의 0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 “정상”이라 했다.

두 해 전 결혼해 지금은 서울 근교에 산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한때 내게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 며느리가 참하고 예뻐요. 인사도 잘하고요.”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그래, 이 집에도 이제 햇살이 들겠구나.’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날 기종이와 함께 글씨 연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아, 저는 기종이 동생입니다.”

그의 말투는 점잖고 예의 있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했다.

“기종이 활동지원사입니다. 형이랑 같이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기다렸다가

함께 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형에게 인사 한마디 없었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책상 위의 과자봉지 하나 건네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너무 무거워

잠시 말을 잃었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결혼식 날에도 형은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하객 명단 어디에도 ‘형’은 없었다.

오직 어머니 한 사람만

조용히 식장에 다녀왔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도

함부로 판단하지 못했다.

이해되지 않지만,

한편으론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장애가 있는 형으로 인해 겪었던

수많은 놀림과 시선,

그것들이 동생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망치듯

도시로 떠나 새 삶을 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때로는 가장 따뜻한 울타리이면서

또한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을 때,

남은 이들은 사랑과 부담,

의무와 회피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도와야 한다”는 도덕과

“내 인생도 살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수많은 형제들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는 생각한다.

형제를 외면한 그의 마음속에도

죄책감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잊고 싶은 가족사를

계속 떠올리며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그를 차갑다 말하겠지만,

그의 침묵 속에는

이미 오래된 상처가 숨어 있다.


‘가족의 윤리’는 그래서 어렵다.

그건 법으로도, 제도로도 정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이다.

그저 인간의 양심과 기억 속에서

조용히 판단될 뿐이다.


기종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형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동생에게는 이미 먼 존재가 되었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조차

명확히 인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미소 속에도

가느다란 외로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동생이 마음을 바꾸고

형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준다면

그 미소는 얼마나 다르게 피어날까.

한 번의 손길,

한 번의 포옹,

그것만으로도 한 인간의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가족은 피로 연결되지만,

마음이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혈연보다 중요한 건 윤리의 온도다.

장애인 가족을 둔 이들에게

가족의 사랑은 때로 축복이지만,

또한 평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 이후 2년 동안

동생은 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 문을 두드릴 동생의 발걸음이

다시 돌아오기를,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가족의 윤리란

완벽함이 아니라,

늦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길을 남겨두는 일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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