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산에 오르는 청년,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배운다
산 밑에 있는 기종이 집은
초겨울이지만 벌써부터 춥다.
내가 도착해서 기종이와 같이 걷는 산을 오른다.
추위에 민감한 기종이는 겨울옷을 입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기종이는 말이 없고, 나는 자꾸 말을 건다.
“오늘은 바람이 좀 차갑네.”
“저기 산너머 하늘 좀 봐.”
“너도 기분이 좋지?”
나는 그렇게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다.
그리고 가끔,
기종이의 눈동자에 맺힌 햇살을 보며
내가 더 많이 배운다는 걸 깨닫는다.
이 아이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인지,
함께 걷는다는 게 얼마나 기적인지를
묵묵히 보여주는 존재다.
그리고 나를 무척 좋아한다.
어느 날은
산길을 걷다 말없이 멈춰 선 기종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말이 없기에 더 깊은 대화,
침묵이기에 더 따뜻한 이해.
나는 오늘도 이 말 없는 철학자와 함께
하루를 걸어간다.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와 대화를 나눈다.
말이 없어도 그의 눈빛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눈이 마주치면 전해오는 따스함, 고개를 끄덕이는 짧은 순간의 수긍,
그리고 가끔 미소 짓는 입꼬리에 묻어난 슬픔.
사람들은 묻는다.
“말도 못하는데 , 무엇을 그렇게 나누어요?”
나는 대답 대신 웃는다
말로만 주고받는 세상의 언어가 얼마나 가벼운지를
나는 기종이를 통해 배웠다.
기종이.
그는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열어준 청년이다.
우리는 매일 함께 걷는다.
겨울이면 언덕길이 얼어 미끄럽지만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마음을 더 꼭 끌어안는다.
네 걸음이 그의 걸음이 되고,
그의 숨결이 내 호흡 속에 젖는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그를 위해 이 길에 들어섰지만,
어쩌면 그가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닐까.‘
침묵 속에 흐르는 시간이 더없이 깊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진심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한 침묵의 시간은
어떤 화려한 언어보다 더 선명하고 진실하다.
나는 그를 ‘말 없는 철학자‘라 부른다.
말 없이 묻고, 말 없이 대답하며
삶의 본질을 바라보는 사람.
그의 눈밫 속엔 세상에 길들지 않은 순수함이 있고,
그의 손끝엔 존재의 온기가 담겨 있다.
그와 함께한지 3년이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묻는다.
“기종아, 삶이란 무엇일까?”
그는 말 없이 웃는다.
그 미소 안에 , 나는 해답을 본다.
말 없는 철학자,
그는 오늘도 나와 함께
존재에 대해 조용히, 깊이,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