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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Oct 21. 2024

아부지는 아구찜을 좋아하셨어~

- 소주도 좋아하셨어 -

차곡차곡 일상


어렸을 때 내가 먹어 본 생선이라곤 딱 두 가지였다.

"느 아부지는 비린 거 안 좋아하신다."라는 엄마의 말씀에 우리 삼 남매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고로 우리가 먹은 생선은 갈치와 조기가 전부다. 그것도 아주 가끔.  생선을 별로 먹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난 비린내에 상당히 민감하다.  우리 아부지도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였다는 걸 오십이 넘은 이제사 알게 되었다.



 

그날도 난 동네의 허름한 해물집 안에서 아구찜을 앞에 두고 아부지와 마주 앉았다.


금요일 저녁 남편도 출장 가고 아이도 일이 있어 나가고 하여 마음 편하게 친정에 갔다. 맛있는 거 사드릴 생각으로.  뭐 드시고 싶냐는 나의 물음에 아부지의 대답은 이번에도 아. 구. 찜.이었다.  엄만 이때다 싶어 나더러 아부지 모시고 가 많이 먹고 오란다. 허름함 = 지저분함이라 생각하는 엄마는 그 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남대문 시장에서 호떡과 칼국수로 든든히 식사를 하고 장시간 쇼핑으로 지쳐있던 차에 막내딸이 적시에 도착해 남편 식사를 나한테 일임한 거다. 난 허름한 건 상관없는데 아구는 썩 좋아하지 않기에 아부지에게 돌려 돌려 말을 건넸다. "아부지 시장 안에 그 제육볶음 맛있던데 거기 아직도 해요?"  우리 아부지 이럴 땐 눈치가 없다. "그럼 하지." 하지만 발길은 이미 아구찜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구찜 에 소주 한 병.

사진 속 컵의 용도는 물컵이 아닌 소주잔이다. 한 사람당 굳이 컵을 두 개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 아부지 지론이다. 라고는 하지만 커다란 접시에 수북이 쌓인 아구와 콩나물을 보니 세 사람도 먹을만한 양이다. 가족모임 할 땐 인원이 많아 잘 몰랐는데 둘이 앉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아구찜 산이다. 인심이 후하기도 하지. 하루종일 별로 먹은 게 없어선지 그날따라 아구찜이 확 당겼다. 쫀쫀하고 탱탱한 아구가 많은 데다 콩나물과 미나리의 양도 적당했다. 게다가 비린내도 안 나고.  생선요리에 민감한 나에게도 별 거부반응 없는 걸 보면 이 집 아구찜이 맛있긴 한 것 같다.  


아구찜 한 입과 소주 한 모금이 입에 들어갈 때마다 아부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파워 E 기질인 울 아부지의 이야기에 잠시 세월을 거슬러 갔다.

(아부지가 군대에 갔던) 그때는 군인 월급이 130원이었다 로 시작해 62년 전 엄마와 처음 만난 스토리, 삼 남매 어렸을 때 형편 어려웠던 얘기, 예전 살던 동네에 아직도 일요일마다 목욕하러 다닌다는 얘기 등등. 그중 뭣보다 귀에 꽂힌 건 아부지가 생선을 아주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장어, 아구, 동태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신단다. 심지어 요즘엔 매일 낮에 인쇄소에서 물회로 점심을 드신다고.


"아부지 생선 싫어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니 엄마가 비린내를 싫어해 안 해줘서 못 먹은 거다"


그런 거였구나!~  엄마 취향 때문에 아부진 그 좋아하는 생선을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별(?)해서 드신 거였다. 그래도 마지막엔 "느 엄마 생선요리 빼곤 다 잘하잖냐. 내가 그 덕에 살았지"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하신다. 그건 나도 인정이다. 잔소리가 쪼금 심하시긴 하지만 아부지 교통사고 때도 암수술 때도 모든 순간 옆을 지켰던 건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그 역시 아부지의 건강을 위한 잔소리임을 알기에.


콩나물 사이에 박혀있던 아구들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이렇게 우린 두 시간 동안 조촐한 만찬을 즐겼다.

시장을 지나오는데 까만 하늘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5개를 사들고 엄마에게 갔다. 뜨겁고 달콤한 단팥이 엄마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엄마도 미소를 짓는다. 아구찜 집에서 봤던 아부지의 미소와 비슷하다. 오래 살면 닮는다더니 미소도 닮아가시네 그려~




"나 오늘 자고 간다~"는 말에 두 분이 엄청 좋아하셨다.

뒤이어 덧붙은 엄마의 한 마디! "거 잘됐다. 나랑 아침 목욕 가자"

눈이 나빠 대중목욕탕은 절대 가지 않는 나인데... 천진난만한 엄마의 표정에 거절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다음날 아침 8시 난 엄마와 목욕투어에 나섰다. 늘 가는 엄마의 목욕탕, 늘 가는 엄마의 죽집, 늘 가는 엄마의 약국을 따라다니며 어릴 때처럼 엄마에게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 엄마 손을 잡고 걸었다. 앙상해진 손가락 사이로 따뜻한 뭔가가 전해졌다. 엄마표 온기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리고 내 마음에 특허로 자리 잡은.  


이틀에 걸쳐 엄마아부지와 평범한 일상을 나눴다. 아주 따뜻하게 그리고 즐겁게.

집에 가는데 아부지가 전화를 하셨다. "고맙다."

그 옆에서 엄마가 한 마디 거드신다. "다음에 목욕 또 가자"


헉! 하하!

대중목욕탕은 정말 가기 싫은데 기분은 마냥 좋은 가을날이었다.


* 오늘의 단어는

효도 おやこうこう(오야코~코~)입니다.


P.S.  팟빵에서 들으실 수도 있어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638/episodes/25018920?ucode=L-YuixJB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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