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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Jan 11. 2024

"와줘서 고맙다"는 아부지말에 울컥 했다

- 엄마표 계란밥과 소주 -

차곡차곡 일상


작년 말 정확히는 2주전 일이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엄마인데, 아빠 하기엔 나이 오십 넘어 좀 아이 같고 아버지 하자니 너무 

딱딱하고 그래서 선택한 단어가 아부지다. 


아무튼 아이 입시가 끝나고 나니 울 엄마아부지의 연말이 궁금해졌다. 전화를 드렸다.

"아부지 우리 연말 파티해요"

"바쁜데 뭐 거기까지 신경 쓰냐! 그날이 그날이지. 근데 몇 시에 오냐?"


아부지의 대화포인트는 마지막 문장이란 걸 난 잘 안다. 엄마가 1년 넘게 심하게 아프신 후로 우린 행사 때마다 외식을 한다. 그날도 맛있는 갈비를 사드릴 생각이었다. 도착 20분 전 옷 입고 기다리시라는 연락을 드렸다. 근데 집으로 들어 오라셨다. 엄마가 점심을 차리셨다고. 몸도 안 좋은데 뭘 하셨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은근 기분이 좋았다. 울 엄마가 좋아하는 롤케이크와 아부지가 좋아하는 초콜릿쿠키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어머나 세상에! 

(게란 빠진) 계란주먹밥, 배추된장국, 시래기 볶음, 잡채와 알타리김치. 한 상 가득히 차려져 있었다. 게다가 소주까지 더해져 가히 화룡점정이었다.


뽀글 머리 김여사표(엄마) 계란밥을 오랜만에 조우했다. 어릴 적 삼 남매 소풍 갈 때마다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만드셨다. 신기한 밥이라며 친구들 사이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았었지~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손에 스며들어 나 역시 딸아이가 현장체험학습 갈 때마다 계란밥을 만들었다. 


그날의 엄마표 계란밥은 계란옷을 입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주먹밥으로 했다시지만 난 안다.

허리가 많이 아파 오래 앉아있기도 서있기도 힘드실뿐더러 손으로 물건을 꼭 쥐는 것도 힘들어서 그렇단 것을... 그럼에도 막내딸과 사위가 온다니 추억을 곁들여 만찬을 준비하신 거였다. 


계란 없는 이 주먹밥이 여태껏 내가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어디 밥뿐이랴. 된장만 풀었다는 배추된장국은 칼칼하면서 담백했고 시래기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금세 녹아버렸다. 


오십 넘은 막내딸과 사위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두 분은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동안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지 못한 것이 죄송해 마음 한켠이 아렸다. 앞으론 연말에 꼭 파티하자고 말씀드렸다. 


원효대교를 지나며 63 빌딩 옆에서 저물어 가는 해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부지였다.

"차 막히지는 않냐? 오늘 와 줘서 고맙다."

아부지의 이 한마디에 순간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고마운 일인 건가. 용돈을 받고 좋은 옷을 입으시는 것보다 엄마아부지는 자식 얼굴을 자주 보고 싶으셨던 건데...어렵지도 않은 이 일을 나는 미루기만 했으니...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번엔 내가 만들어 드려야지. 계란옷을 입은 계란밥을!


만드는 방법을 잠시 설명하자면~

1. 잘게 다진 야채와 갈아놓은 소고기를 볶아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다. 

2. 여기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뜨거운 밥을 넣어 살살 젓는다. 

3. 잘 섞인 밥을 꼭꼭 쥐어가며 하나씩 정성스레 뭉친다. 

4. 그런 다음 계란물을 만들어 밥을 하나씩 돌돌 말아주면 된다. 

많이 어렵진 않으나 시간은 꽤 걸린다. 수작업 100%이기에. 


이 영상은 주먹밥들이 하나씩 계란옷을 입는 과정을 찍은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며 풍수지탄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앞으론 자주 가서 식사도 하고 카페에서 두 분 좋아하시는 딸기라떼도 사드릴 것이다. 효도란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아주 소소한 행동임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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