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작 20분 전 4층 강의실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다. 차가운 겨울 공기와 함께. 푸른 하늘의 기운을 받은 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수직으로 눈을 내렸다. 파란색 트럭이 눈에 띄었고 순간 거기에 쓰인 문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시 태어나러 가는 중
태어나러 가는 거면 산부인과인데 '다시'가 붙었으니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으나 그러기엔 트럭이 너무 푸르고 글자체 역시 적잖이 고딕이다. 자세히 보니 트럭 왼쪽 위에 캔/페트라 쓰여 있었다. 그래서 페트병과 캔들이 밝은 미소를 띠고 있구나. 자신의 재탄생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가보다.
저 녀석들이 어떻게 모인 건지 궁금해 검색해 보니~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들을 통해 수익화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순환자원의 가치를 공유하고 세상을 이롭게 바꿀 재활용 문화를 만들어가는 수퍼빈이라는 기업이다. 각 지역에 네프론이라는 AI로봇(폐기물 수거 기계)을 설치해 사람들이 캔과 페트병을 넣으면 재활용 가능한 것은 먹고 안 되는 것은 도로 내뱉는단다. 똑똑하기도 하지!
그 작은 단위의 네프론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신장이 몸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것처럼 네프론이라는 로봇(기계)이 지구의 불순물을 걸러낸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라 한다.
전국에 840여 대,그중 서울에 140여 대가 있다.
수퍼빈 사이트에서 위치검색도 가능해 집이나 일터에서 가까운 곳도 찾을 수 있다.
얼마 전부터 1층 입구에 좀 고급져 보이는 자판기가 있다 했더니 바로 그게 네프론이었던 거다. 수업 끝나고 갖고 있는 생수병을 네프론에 넣어볼 생각에 한껏 부풀었다.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란 힘찬 인사말로 시작한 수업이 오츠카레사마데시타(수고하셨습니다)라는 알찬 표현으로 마무리됐다.
드디어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시간이 되었다.
왼쪽은 캔, 오른쪽은 페트병 전용이다.
반드시 깨끗한 페트병일 것.
색깔 있는 페트병은 안 먹음.
투입개수를 초과해도 포인트 적립은 하루 30개까지만 가능함.
개당 10원이란 현금이 쌓여 그런지 은근 까다로운 친구다.
수퍼빈 앱을 깔아야 한다고 했으나 휴대폰번호만 입력해도 포인트적립이 가능했다.
페트병을 넣으니 압축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궁둥이부터 넣으라 들었으나 깜빡 잊고 마개부터 넣었다. 그래도 알아서 처리해 주는 걸 보니 참 똑똑한 녀석이다. 캔 역시 10초 정도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화면에 뜬 적립금 10원! 세상을 이롭게 바꿀 재활용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다음 주에도 또 갖고 와야지!
아침에 본 트럭이 다시 왔다. 하루에 두 번 오나 보다. 다시 보니 긍정적인 환생을 나타내는 듯한 밝고 안정적인 푸른색 바탕에 수퍼빈 이란 회사로고가 이제사 눈에 들어왔다. 트럭 궁둥이에 우리 주변을 다시 보게 하는 참신한 문구가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