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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Sep 11. 2023

나는 왜 이곳을 떠나려 하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애 둘 키우면서 일하는 거 힘드시죠'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안사람이 되기 위해 그만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짧은 대화 끝에 '저는 평생 일할 팔자입니다.'라고 하면 혀를 두르며 허허 웃어요. 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질문은 대번에 이렇습니다. '어디 좋은 데 가시나 봐요?'


  큰 회사, 일종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대면 (아마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그런 곳입니다. 근무환경도 나쁘지 않고, 복지도 꽤 좋은 편에 속하죠. 객관적으로 보면 참 좋은 회사입니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좋은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어느 날,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문득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부의 전공을 살려, 학생 때부터 꿈꾸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에서 더 이상 가치를 못 찾는 저를 발견했어요. 예를 들면, 만두를 너무나 좋아해서 공장에 취직했는데, 공장에서 만두 만드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만두를 만드는 곳에서 만두를 만들기 싫다니, 이를 어쩌면 좋죠. '이제 이 일을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소리의 형태로 흘러나왔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떠도는 생각들은 많지만 완결된 문장으로 종결지어지는 것은 사실 드물고, 제 입으로 그 문장을 읊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때부터 조금 깊숙이 생각해야만 했어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이 일에서는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가. 지금 하는 업무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이런 (사치로운) 생각이 드는 것인가. 우선 경제논리가 우선시되는 업무를 놓고 싶었습니다. 기업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해야만 합니다. 개인의 특징을 발휘하기보다는 비슷한 평균의 품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고객 대응에 효과적입니다. 만두공장에서 A브랜드로 출품되는 만두 맛이 늘 똑같아야 하는 것처럼요.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기업에서 일하면서 경제논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니, 제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군요. 그래도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일과 업무들이 있지 않겠어요?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가십 대신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책도 사서 읽고요.


  다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는 걸까요. 학부 때 배웠던 이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사업화시킨 사례들도 왕왕 있었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저만치 걸어가는데, 나만 이곳에서 정체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회사를 떠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면 어쩌지.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었을 때, 헐벗은 직원 1의 모습으로 남을 제가 두려웠습니다. 바야흐로 80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정년까지 채워서 60에 나온다고 한들 내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쏟아지는 질문에 허우적거릴 때, 제안을 하나 받았습니다. '우리는 일 할 사람이 필요해. 우리가 가진 가치가 네게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철사에 화약을 바르고 있었는데, 스파크가 튄 겁니다. 순식간에 폭죽이 되어 '치이이익' 치솟았습니다.


  나 스스로도 나를 믿지 못할 때,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조금 용기를 내어 새로운 문을 열어보기로 합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모험을 감행해 보기로 합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라 믿어보기로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소 살아남기 위해 떠나고자 했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습니다. 기업의 안정성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은 기업 밖을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야생이라 인식합니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듯 하지만, 새로운 문이 또 열릴 겁니다. 새로운 문 뒤에 판도라가 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모두에게 진솔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말은 않지만  '쟤가 아직 정신 못 차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저의 선택을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선택에 그들의 이해가 사실 필요할까 싶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걸어가야 하는 것은 저 이니까요.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무게감을 제가 알고 있으면 되죠.


어디 좋은 곳에 가시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곳이에요. 제가 하기에 달렸죠.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그리 많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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