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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Mar 01. 2024

떠날 생각을 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아마 그만두려는 저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예요. 실제로 몇 제 지인은 직접 묻기도 했고요. '아니 대체 그 좋은 만두회사의 그 직무를 두고 왜?' 이럴 땐 이런 속담이 있지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고요. 한 길 제 속에 있는 생각들은 가끔 저 스스로도 감당이 안될 때가 있어요.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일상에서 자꾸 마음에 걸그치는 것들이 생기는 거죠. 눈 감고 현재에 순응하며 사는 게 잘 안 되는 저를 보며 저는 저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냥 저는 이런 사람이란 것을요. 길이 넓거나 좁거나 곧거나 울퉁불퉁하거나 제가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야 하는 것이니 가야죠 뭐.


곧게 뻗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은 편하더라고요. 원래 결정하기 전까지가 제일 힘든 법이에요. 결정하고 나면 이제 제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되지요. 인수인계 문서를 정리하고, 몇몇 사람들에게 미리 소식을 전하면서 차분한 마음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도요. 직원들 복지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사기업이지만 오너가에 소속되지 않다 보니 아주 희박한 확률로 신입사원이 CEO가 될 수도 있는 조직이고요. 그러다 보니 시스템이 무척이나 잘 갖추어져 있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힘써 일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일할 때 부딪혔던 사람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더라고요. 한 발자욱 떨어져 보니 모두가 제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귀한 사람들이었어요.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곳을 포함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스스로가 원하면 어렵지만 원하는 직무로 갈 수도 있고, 야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이라 남들에게 어떤 의미로 자랑하기에도 좋고, 월급이 밀릴 걱정도 없고, 무엇보다 정년이 보장되고요.


'이 만두회사에 언제까지 있어야 하나' 하고 생각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막상 그만두려니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쉽지는 않았냐고요? 그건 아니에요. 그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이런 좋은 곳에서 멋진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어려운 일들을 하며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하고요. 내가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너무나 뿌듯했어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변하지 않는 곳이 대기업 내부에 있는 조직원들인 것 같아요. 회사는 사명을 바꾸고, 신사업을 추진하며,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내부에 있는 직원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다며 볼멘소리를 하기 마련이지요. 그 누구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에요. 다만, 보는 시각이 다를 뿐이죠. 정년이 보장된 곳이지만, 어차피 이곳에서도 일하는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이왕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수동적으로 타의에 의해 변하지 않고 나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서 움직이고 싶어요.


주사위는 굴려졌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매듭을 잘 짓는 일이겠죠. 감사한 마음 눌러 담고, 잘 떠나보려 해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겠다는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디에서든 받은 만큼 베풀고, 아는 만큼 나누고, 제게 있는 능력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려 노력할 거예요. 내가 몸 담았던 곳이 의미 없는 일터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잘해 볼게요. 다른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제가 더 잘할게요. 오늘의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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