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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20. 2023

임테기의 노예

 "이번에도 단호박이야."


  아침에 일어나 조그마한 플라스틱 소주컵에 소변을 담는다. 1개에 1천원정도하는 원포임테기를 소변컵에 담그고 소변이 임테기를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본다. 임테기에는 묽은 붉은기가 올라간다. 천천히 올라가는 나의 소변은 임테기에서 기준선을 드러냈다. 기준선 아래에 있는 임신을 나타내는 선은 붉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3분을 기다려본다. 5분을 기다려본다. 10분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결국 붉어지지 않은 그 선은 하얗게 말라버린다.


 배란일로부터 9일차부터 시작한 이 임테기의 여정은 생리가 터지고야 끝이 나고 만다. 매일 아침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오후의 테스트는 단호박으로 마침표를 맺는다. 남편에게 매번 단호박이라고 말할 때, 나는 단호박을 먹고 매번 울었다.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았다. 1년 6개월동안이나 계속된 임테기와의 전쟁에서 임테기의 노예가 되기를 나는 기꺼히 자처했다. 그리고 항상 철저하게 패배했다.


 이 조그마한 5cm 길이에 1cm 조금 넘는 폭을 가진 이 자그마한 스틱이 나를 이렇게 붙잡아 둘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테기를 최대한 늦게 하라고 말한다. 생리예정일에 임테기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하면서 임테기를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매번 결심하지만 쉽지가 않다. 매번 찾아오는 기대감과 싸우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혹시나,,,' 

 하는 감정에 임테기를 꺼내어 테스트를 하고 단호박을 먹는다.


 이번 임신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한번 임테기를 참아보려고 노력해보았다. 이번 주기에는 난임병원에서 '브레트라정'이라는 배란유도제를 먹기도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테기를 찾고, 나를 존중하며 노예가 되지 말자고 결심하며 임테기를 꾹 참았다. 남아있는 임테기는 남편에게 아예 숨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배란 10일차가 되어 임테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딴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평소 같은면, 매번 반복해왔던 '배란 10일차 임테기'를 검색해보아야하지만 꾹 참고 참았다.

 배란 11일차가 되었다. 임테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배도 아픈 것 같고 임신초기 증상이라는 방귀도 엄청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임테기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임테기를 참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생리예정일이 되었다. 어쩐지 생리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침부터 울기 싫어서, 임테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임테기를 하지 않았다. 임테기를 하지 않고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언제 생리가 터지나 기다리며 온갖 검색을 다시 시작했다. 탈퇴하였던 임신준비 카페에도 다시 검색해 검색을 

해보며 나의 임테기를 향한 집착이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집에가 임테기를 해보았다. 


하도 많이 보아서 이제는 눈에 익숙한 임테기사진과 글에 따르면 생리예정일에는 소변이 닿기만 해도 찐하게 2줄이 나온다고 한다. 나의 임테기는 흰색이다. 그 흔하다는 시약선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실패다.

그냥 생리나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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