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서 Oct 11. 2024

다수결의 반칙- 세번째 반칙

3) '텃새'로 둔갑한 다수결의 반칙

우리 말에 '텃새'라는 말이 있다. 텃새는 어떤 그룹에서 기존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이 새로 온 사람에게 부리는 특권 의식을 말하는데 난 이 역시 다수결의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그룹의 다수는 새로 온 사람에 대한 환영보다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 또는 '저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인간이야?'라는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런 텃새가 어디에도 있고 그걸 더 심하게 부리는 사람도 어디에나 있다는 걸 알기에 첫 출근 날, 첫 등교 날, 첫 참석 날이면 기대감보다 긴장감의 비중이 높다.


텃새는 텃새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왕따'이고 다수가 소수에게 범하는 반칙에 해당한다. 처음 왔다는 이유로, 아직 이 그룹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권력이라도 쥔 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의 아래에 두려고 한다. 물론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배 격이긴 하다. 하지만 진정한 선배들이라면 후배인 신입을 잘 가르쳐 주고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게 옳지 않을까.



구축 아파트에는 대부분 노인정이 있다. 시골로 치면 노인회관 같은 곳인데 아파트에 사는 고령자들이 서로 친분도 쌓고 시간을 보내라고 아파트 건축 시 만들어 둔 공간이다. 이런 노인정에서,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분들 사이에서도 다수결의 반칙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처음 들어온 회원의 나이를 떠나 신입이라는 이유로 설거지를 강요하기도 하고 노인정의 청소 담당이라고 지정하기도 한다. 그들만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내보내거나 나가게 만든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모든 노인들이 편하게 와서 적적함도 달래고 쉬라고 만들어 둔 공간에서 오히려 적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조직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는 '막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며 뉴페이스에게 온 갖 궂은일과 잡일을 다 떠넘긴다. 술자리에서도 '막내가', 회의 준비도 '막내가', 심부름도 '막내가'. 자기 집안 막내도 아닌데 자신보다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애 취급을 하기 시작한다. 더 심한 경우는 자신이 몇 달 일찍 들어왔다고 선배라며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새사람에게 반말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


'너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다수의 기존 멤버는 신입이 잘해도, 못해도 이 말 한마디로 눌러버린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신입이 잘하면 칭찬해 주는 게 아니라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게 설치지 말라하고 하는 다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 물론 오래 있던 사람이 더 잘 아는 건 사실이지만 오래 있던 자신보다 막 들어온 사람이 더 잘하다는 건 자신이 고인 물이자 썩은 물이 되어간다는 반증은 아닐까.


보통 신입사원은 여러 명이 같이 들어가도 선배들의 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신입답게' 행동해야 한다. 자칫 그들 눈밖에 나기라도 하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힘들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대부분 다수결의 반칙에서 비롯된다. 팀장이나 간부에게 찍힌 사람은 다수의 팀원으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팀장은 마치 업무지시처럼 타깃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하거나, 일을 주지 말라고 하거나, 회의에서도 배제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런 명령은 또 어찌나 잘 듣는지 일사불란하게 대동단결되어 한 사람을 집요하게 괴로움에 빠뜨린다. 자기 아이한테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하면서 부모는 회사에서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아이러니.

드라마 '스토브리그' 한 장면

직급이 높아도 기존의 다수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 팀장이 새로 오거나, 소대장이 새로 오면 부하들이 알아서 깍듯이 모실 거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전에 남궁민, 박은빈 배우 주연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이런 상황을 아주 잘 그려놨다. 구단에 새로 온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 배우)가 선수 출신이 아니라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다수의 선수들이 그의 말을 무시한다. 그리고  임동규(조한선 배우)는 선수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백승수를 철저히 짓밟으려 애쓴다. 마치 군대에서 부대 생활을 오래 한 병장과 상병들을 기점으로 무리를 지어 새로 온 신임 소대장을 쥐고 흔들려는  경우와 같다.



얼마 전, 내가 만난 노부부는 자신들이 은퇴 후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겪어야 했던 마을 사람들의 텃새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들은 은퇴 후 마련한 자금으로 한적한 시골 마을에 땅을 사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을 짓는 과정에서부터 짓고 나서까지 마을 사람들의 반칙은 계속되었다. 집을 지을 때는 마을에 피해를 주니 마을 발전 기금을 내라고 다수가 몰려와 소리를 질렀고 집을 다 짓고 나서는 마을의 관례이니 마을 발전 기금을 또 내라고 윽박질렀다. 내가 내 돈을 주고 땅을 사서 정당하게 집을 지었는데 이들은 마치 자기 땅에 불법으로 집을 지은 것처럼 돈을 뜯어가려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찾아와 마치 무슨 집 검사를 하는 사람들처럼 굴기도 했다고 한다.


이 노부부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영화 '이끼'가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이장(정재영 배우)은 마을의 왕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모두 한 통속이었다. 그 와중에 해국(박해일 배우)이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아버지가 살던 시골 마을을 찾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처음 본 해국을 아무 이유도 없이 경계하고 불편해하는 눈빛을 보낸다. 해국은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에서 살겠다는 선언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멘붕에 빠진다. 그런데 이장이 해국의 정착을 허하자,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돌변한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마을에 처음 온 사람에게 모두가 경계를 했고 다수의 중심인 이장의 한마디에 또 모두가 태도를 바꾸는 이런 맹목적 집단 추종.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동백이가 마을에 나타나자 많은 마을 사람들의 타깃이 된 것처럼 다수의 소수에 대한 타깃 현상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과정도 조직에 녹아드는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건 조직에 녹아드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다수의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이기'하는 일종의 악습이라 생각한다. 조직 문화에 어울려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한 집단에게 맞추도록 강요하는 건 절대적으로 반칙이고 폭력이다. 이런 다수결의 반칙이 존재하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텃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서 다수결의 반칙 1, 2편을 통해 언급했듯이 우리는 평생 다수의 입장일 수 없다. 누구든 언제든 신입이 될 수 있고 뉴페이스가 될 수 있다. 이사를 가게 되어 새로운 동네의 뉴페이스가 될 수 있고, 이직을 해서 새로운 직장의 뉴페이스가 될 수 있고, 취미 활동을 위해 동호회에 가입해 뉴페이스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회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다수결의 반칙이 우리가 새로운 사회에 진입하는 데 있어 장벽을 만들고 장애물로 작용한다.


텃새는 더 이상 문화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있는 것'으로 치부해서도 안된다. 텃새는 다수결의 반칙이요, 집단적 괴롭힘이며, 다수를 권력화시킨 비겁한 무기이다. 나도 언젠가 소수의 신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뉴페이스에 대한 진심의 환영을 해주도록 하자. '신입생 환영회'는 환영을 해주려고 모이는 자리임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작가 인스타: @author.otho

작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othopshow

작가의 이전글 다수결의 반칙- 두번째 반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