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시간
"아버지, 아직 안 주무셨어요?"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 평소 10시 전에 잠에 드시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큰일 났다... 계엄이 떨어졌어..."
"네? 뭐라고요?"
아버지의 침울하고 떨리는 목소리에 난 아버지께서 잠꼬대를 하시는 줄 알았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고... 박정희 대통령처럼 말이야."
"계엄이요? 요즘 시대에 무슨 계엄이에요?"
아버지의 두 번째 '계엄'이란 단어의 언급이 이어질 때 난 아버지께서 잠꼬대가 아닌 건 확신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유튜브 같은 SNS에서 가짜 뉴스를 보신 거라 생각했다.
"에이... 아버지 어디서 가짜 뉴스를 보신 거예요? 누가 이 밤에 그런 뉴스를 보냈어요?"
"가짜 뉴스가 아니라 진짜 계엄이야. 지금 뉴스 틀어봐. 너 앞으로 글 쓸 때 조심해야 해. 글 한번 잘 못썼다가 인생 망치는 시대가 됐어."
아버지의 세 번째 '계엄'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난 비로소 이게 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뉴스를 틀었다. 아버지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난 뉴스를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잠꼬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짜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인지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예전 계엄 때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잡혀갔어. 너도 진짜 조심해야 해. 알았지?"
난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렇게 하겠다고, 알겠다고 안심시켜 드리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2024년에 계엄이라니. 내가 역사로만 접하던, 말로만 듣던, TV에서만 보던 그 계엄령이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난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계엄이라는 게 그 시대를 사셨던 분들께 얼마나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존재인지를. 그 공포와 충격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부모님과 선배들에게는 진하게 남아있었다는 것을.
마치 영화 '서울의 봄'에서 긴박했던 장면들이 뉴스를 통해 연출되기 시작했다. 국군은 '계엄군'이 되어 헬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고 국민들은 국회에 모여 계엄군과의 대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에 들어갈 수 있니, 없니 하며 통제를 당하기 시작했고 기자들은 인파에 밀리는 자신의 몸뚱이를 건사하기보다 카메라를 부여잡고 이 충격적인 현실을 알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난 아버지의 간곡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이 계엄군의 비위에 거슬리게 한 것이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이 한심함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되었고 계엄령을 발표하고 있는 입으로 향했다. 이건 차라리 가짜 뉴스여야 했다.
뉴스 속보를 지켜보며 마치 영화 '서울의 봄'을 볼 때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국회의원 재적의 과반 수가 지금 이 시간에 국회로 다 올 수 있을까? 아까 국회의원들 출입을 통제한다던데 못 들어가면 어쩌지? 계엄군이 먼저 도착해서 투표를 못하면 어쩌나? 2024년 12월 4일 00시를 넘는 시간에 이런 걱정을 하며 뉴스를 보고 있어야 했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찰나 포고령은 내 걱정을 증폭시켰다.
국회의원과 의회의 활동을 금지하겠다는 협박이 가장 확대되어 내 눈에 들어왔다. 좀 전에 내가 하던 걱정이 현실화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말도 안 되는 계엄령을 해제하려면 국회의원들의 의결이 필요한데 역시나 그걸 막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치와 국회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300명 중 190명이라는 과반이 넘는 숫자가 국회로 도착했다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이 사태를 막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시간에 190명이나 국회에 빨리 도착했다. 이제 투표를 해야 한다. 계엄군은 국회로 진입을 계속 시도하고 있고 국회의원들은 빨리 투표를 진행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 빨리 좀 해라!!"
나도 TV를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그만큼 나도 마음이 조급했다. 계엄군이 국회로 들어온다면 투표는 무산되니까. 그러면 정말 우리는 아버지처럼 떨리는 목소리처럼 떨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국회의장은 투표를 빨리 진행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고 있었다.
"안건이 올라와야 합니다."
그래. 아무리 급해도 같은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 누구처럼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불법이 되니까. 우원식 의장은 투표를 위한 절차를 거치고 있었다. 새삼 느꼈다. 우리에게 이 '절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비록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릴 때도 많지만 절차를 지키지 않은 행동은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었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모인 190명의 투표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가 되거나 법적 효력을 상실한다면 우리에게 유일한 방어막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난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 절차가 빨리 진행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절차를 거친 합법적 투표는 진행되었고 190명 전원 찬성으로 의결되어 말도 안 되는 계엄령을 저지할 수 있었다. 이 투표가 가능하도록 시민들이 나와 계엄군의 진입을 육탄 방어하였고 국회의원 보좌진들도 문 앞에서 소화기를 뿌리고 책상과 의자를 쌓으며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사실 계엄군의 딱지를 달고 나온 국군의 모습도 딱히 이 어이없는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계엄군이었지만 국군의 모습으로 시민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국회의원들은 빠르게 대처해 주었으며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데 소극적이지 않았다. 이 영화 같은 현실을 마주하며 난 정말 몇 번이나 손가락 꼼지락 거렸는지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우울한 시대가 올까 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질까 봐, 어쩌면 그런 시대가 예전보다 더 길어질까 봐 국회에 관심도 없던 내가 국회의원들의 투표가 진행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다행히 이 말도 안 되는 계엄령은 6시간 만에 해제가 되었지만 국민들은 6시간 동안 불행했다. 계엄 선포의 무게는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웠고 이제 이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 진행될 거 같다. 국민들을 6시간 동안 불행하게 만든 대가는 6년보다 훨씬 더 길거라 생각한다. 역사에 남을 것이고 디지털 세상에서 무한 회자될 것이니까. 새삼스럽지만 이 불행을 6시간으로 끝나게 해 준 국회위원, 국민, 기자들께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처한 군경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이제 국민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