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산책길
파도마을 산책길을 나서며 행복한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토록 정겹고도 아름다운 풍경과 동행할 수 있어 감사한 아침이다.
마을 골목길 대문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소한 녀석이다.
연등처럼 나란한 저 꼬투리 안에는 또 다른 생명이 숨 쉬고 있으리라.
늙은 농부는 저 건장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누가 호박꽃을 못생긴 여자에 비유했던가.
오류다.
저토록 화사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있던가?
기타 하나 달랑 멘 장발족 청년을 만났다.
암울했던 그 시절엔 아마도 순경의 가위질을 피하지 못했으리라.
총각 더벅머리를 참빗으로 곱게도 빗었다.
거미 청년이 멋들어진 별장을 짓고 처녀를 유혹한다.
저토록 정교한 집을 지은 것을 보니 아마도 수학을 전공했으리라.
귀농한다 지리산에 터를 잡았지만 아직도 내 집이 없는 난 저이가 부러울 뿐이다.
섬진강 운해를 계족산 능선이 살포시 올라타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어디로 갈 것인가?
구름에게 물어볼까나.
마을 뒤 과수원에서 알밤이 토실토실 잘도 익어간다.
밤알이 실해질 때는 가시도 날카로움을 더해간다.
더벅머리 머슴 동원해 알곡을 훔쳐간 마을 계집의 찰진 엉덩이에 살짝 던지고 싶다.
마을 뒤 지리산 둘레길에 올라 안갯속 파도마을을 바라본다.
올 초 지리산 산행길에 무작정 찾아들었던 마을이다.
이토록 어여쁜 삶터를 찾고도 아직도 부유하는 난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누가 그렸을까?
피카소, 중광, 이외수 아니면 절대자?
오늘은 늙은 내 삶에 청춘처럼 푸른 물감을 뿌려줄 화가를 만나러 가야겠다.
(사족)
귀농 초기 구례 파도마을 산책길에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