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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Oct 04. 2022

돌아누운 책

행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

# 돌아누운 책


기어이 저놈마저 돌아누워버렸다. 나나 저놈이나 서로 얼굴 마주하기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젠장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필자에겐 버릇이 하나 있다. 읽어도 소화는커녕 되새김질도 못하고 뱉어내버리는 책을 일정기간마다 태우거나 내다 버리곤 한다. 때로는 짐이 되어, 때로는 불쏘시게로 쓸 목적으로, 때로는 꼴 보기 싫어 이 짓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핑계이고 나 자신도 인정하기 싫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듯하다. 선지식이 남긴 유산을 읽되 소화도 행하지도 못하는 모자람을 감추기 위한 기만술로 의심이 든다. 


가끔은 태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책들도 있다. 밥벌이 수단으로 읽는 책들인 경우 차마 다 내치지 못하고 일부는 보관을 하게 된다. 이번 경우도 같은 분야 책을 읽고 버리고 구입하기를 족히 수백 번을 반복한 후에 벌어진 일이다. 한 번의 실수로 목표에서 멀어지니 핑곗거리를 찾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태우지 못하니 책을 태우고,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니 선지식을 버리려는 것이다. 그마저도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 책장에서 뺐다 꽃았다를 며칠째 반복하는 우둔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결국 차마 치우지 못하고 표지가 보이지 않게 돌려놓았다. 책이 스스로 돌아누운 것인지 내가 돌려놓은 것인지 불분명하다. 행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거늘, 환갑이 되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먼저 결정장애를 태우거나 내다 버려야 한다. 


최근에 다시 읽은 최인호 작가가 쓴 '산중일기'에 나오는 '제자 마조와 스승 회양의 대화'를 통해 돌아누운 책과 대화를 시도해본다. 


일찍이 마조가 앉아서 좌선만 하고 있음을 본 회양이 앉아 있는 제자 곁에서 기왓장을 갈기 시작하였다. 화가 난 마조가 스승에게 물었다.

"도대체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이에 스승이 대답하였다.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까 하네."

이에 마조가 빈정거렸다.

"그렇다고 기왓장이 거울이 되겠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승이 소리쳐 말하였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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